
고속철 추돌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26일 저장 성 원저우 시에서 만난 리샤오밍(李小明) 씨는 현지의 격앙된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공산당 일당 독재 아래에 있는 중국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분노’라고 표현하는 건 흔치 않다. 고속철 신화의 붕괴에 대한 배반감과 사고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정부의 무능력 및 은폐 의혹이 집단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5일 밤 원저우 세기광장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진상을 알고 싶어 왔다. 정부는 이번 사고에 대해 마땅히 반성하고 교훈을 찾아야 하는데 왜 자꾸 책임을 모면하려 하느냐”고 말했다. 집회에는 시민 10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중국에서 집회를 하려면 공안국에 사전 신고해야 한다.
이에 앞서 사고 피해자 유가족 등 100여 명은 24일 밤 원저우 시청사로 몰려가 책임자 면담을 요구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우리를 갖고 놀고 있다. 왜 사과하는 사람이 없느냐”며 청사 진입을 시도했다. 이번 사고로 임신 7개월의 부인과 장모 처형 처조카를 잃은 양펑(楊峰·32) 씨는 “정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지 48시간이 지났지만 철도부 직원 누구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도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한 여성 누리꾼은 써우후(搜狐)닷컴에 올린 글에서 열차 잔해 더미에서 구출된 30개월 된 샹웨이이 양을 거론하며 “중국에서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투표권이 없어서 너에게 인간의 존엄을 얻을 수 있게 할 수도 없고, 진정한 법률 보호가 없어 네가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 대한 불만도 쏟아내고 있다. 누리꾼들은 웨이보에 올린 글에서 “원 총리가 자연재해 현장에는 가면서 인재 현장은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원 총리를 비판하는 글은 이날 수백 건에 달했다. 중국에서는 국가 수장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금기시돼 왔다. AFP통신은 26일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시민들의 분노가 ‘정치적 선’을 넘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원저우=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