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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죄 0’… 노르웨이 경찰, 천국에 취해 있었나

입력 | 2011-07-27 03:00:00

헬기조종사-구조대 모두 ‘4주간 휴가중’




노르웨이 경찰은 22일 수도 오슬로에서 30km가량 떨어진 우퇴위아 섬에서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가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한 지 1시간 35분이 지나서야 섬에 도착했다. 총기 난사가 시작된 지 30분도 안 돼 언론들은 헬기를 띄워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경찰은 지척의 사건현장에 왜 그렇게 늦게 도착한 것일까. 그 미스터리가 풀렸다.

노르웨이 경찰은 26일 기자회견에서 “경찰이 사건현장에 1시간 반 만에 도착한 이유는 헬기 조종사를 비롯한 구조대 전원이 4주간의 휴가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고를 받은 경찰특별기동대(SWAT)는 출동하려 했으나 헬기를 띄울 수 없어 차량으로 섬 건너편 나루까지 도착했고 배마저 구하지 못해 또다시 25분을 보냈다. 테러 당시 헬기는 헬기장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안네 홀트 전 사법부 장관은 “경찰이 1시간 반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최소 30명의 젊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현지 공영 라디오인 NPK에 따르면 오슬로 경찰 예산으로 운영하는 헬기는 경비 절감을 위해 지난 2년간 운행하지 않았다. 오슬로 경찰 측은 “예산이 줄어 헬기를 운행하기가 힘들어져 휴가를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오슬로 경찰은 2000년 초 헬기를 새로 도입할 때 “15분 안에 출동할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노르웨이 경찰의 기강해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섬에서 브레이비크가 가장 먼저 맞닥뜨렸던 섬의 보안담당 경찰인 트론 베른트센 씨는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두 종류의 총기로 완전 무장한 테러범은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하면서 베른트센 씨를 가장 먼저 살해했다. 베른트센 씨는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의 이복오빠다.

경찰은 사망자 수를 놓고도 오락가락했다. 당초 사망자 수를 93명으로 발표했던 경찰은 26일 “2건의 연쇄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76명으로 집계됐다”고 정정했다. 외위스테인 멜란 경찰청장은 “일부 사망자를 중복해 세는 바람에 희생자가 늘었다”고 밝혔지만 공신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늑장 출동에 대해서는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노르웨이 현행법에 따르면 경찰이 발포하려면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런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강간과 폭행 사건은 조금씩 늘어났지만 살인사건 발생 비율은 제자리였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9년 인구 460만 명 가운데 살인범은 29명에 불과했다. 총격전 등 긴급한 상황이 흔치 않다 보니 경찰이 무장할 필요도 점점 줄어들었다. 아무리 사회가 평온해도 경찰 응급실 등 사회의 필수 부문은 최고의 대비태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이어져온 천국상태’가 기강해이를 불러오는 화근이 된 것이다.

이번 사건 이후 경찰 내부에서도 “범인이 소지하는 무기를 경찰도 휴대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을 잠그지 않은 채 마음 놓고 외출을 할 만큼 안전한 나라였던 노르웨이의 치안에 대한 인식도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르웨이 주재 한 외교관은 “노르웨이에서는 경찰이 급히 출동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상사태에 대비한 훈련이나 매뉴얼이 제대로 안 돼 있다”고 전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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