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4일 자유형 400m 예선이 끝나자 박태환의 얼굴은 굳어졌다. 기록이 좋지 않아 당초 예상했던 2, 3, 6번 레인이 아닌 1번 레인을 배정받았다. 1번 레인은 물의 저항을 크게 받고 상대 레이스를 체크할 수 없어 불리하다. 레이스를 망칠 것 같은 분위기를 간파한 마이클 볼 코치(49·사진)는 박태환을 불러 20여 분을 얘기했다. “너는 그동안 훈련을 잘했다. 상대를 꺾을 수 있는 기록을 계속 내왔기 때문에 절대 걱정할 필요 없다. 자신을 가져라”는 게 요지. 그동안 훈련 기록 일지도 보여줬다. 박태환은 다시 자신감을 찾았고 괴력의 스퍼트로 4년 만에 월드 챔피언에 복귀했다.
#2. 볼 코치는 27일 자유형 100m 예선을 앞두고 다시 박태환을 불렀다. 전날 자유형 200m 결선에서 초반 100m 페이스가 떨어진 것을 지적하며 “이번 레이스는 200m를 대비한 훈련이다. 죽을힘을 다하라”고 말했다. 박태환은 48초91로 자신의 최고기록(48초70)에 근접한 페이스로 준결선에 올랐다.
호주 출신 볼 코치는 박태환에게 축구의 ‘거스 히딩크 감독’ 같은 존재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축구를 세계 4강에 올려놓았듯 볼 코치는 세계를 제패하고 망가진 박태환에게 다시 세계 정복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챔피언이면서도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 전 종목 결선 진출 좌절의 아픔을 겪고 있던 박태환은 지난해 초 볼 코치를 만났다. 볼 코치는 베이징 올림픽 3관왕(여자 개인혼영 200m·400m, 계영 800m) 스테파니 라이스(호주)를 키운 지도자다.
볼 코치는 박태환에게 확고한 목표의식을 심어줬다. 평소 인자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목표 기록에 들어오지 못하면 “그러려면 물에서 당장 나와서 쉬어라”고 호통을 친다. 한 번 할 때 제대로 집중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 볼 코치가 제시한 목표 기록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훈련 기록. 박태환은 자연스럽게 국제 경쟁력을 다시 키웠다. 훈련할 땐 ‘호랑이’지만 평소엔 모든 고민과 아픔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다정한 아저씨다. 박태환은 “아버지 같다”고 했다. 볼 코치가 있어 박태환의 자유형 400m 올림픽 2연패 전망은 밝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