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작뮤지컬의 대세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DJ DOC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만든 ‘스트릿 라이프’(아래쪽에서 왼쪽)와 라디오에서 들을 법한 다양한 가요를 토대로 만든 ‘온에어 초콜릿’. CJ E&M·두앤컴퍼니 제공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마당 지하 1층 연습실. ‘파스’와 땀이 뒤섞인 냄새가 입구까지 풍겨왔다. 배우들은 연습 중간 중간 짬이 날 때마다 구석에 놓인 물을 들이켰다. 격렬한 춤 동작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1막의 마지막 곡 ‘런 투 유’가 끝나자 배우들이 너나없이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가 먼 자리까지 들려왔다.
다음 달 3일부터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CGV 팝아트홀에서 공연을 시작하는 신작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의 막바지 연습 현장. 올해 줄 잇는 주크박스 뮤지컬 행진에 또 한 편이 보태지려는 순간이다. 이 작품은 나이트클럽에서 각각 DJ, ‘삐끼’(호객꾼), 웨이터로 일하는 세 청년이 댄스그룹으로 데뷔하는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남성 3인조 그룹 DJ DOC의 음악들로 엮어 낸 뮤지컬이다.
음악적 통일성 없는 기존 곡들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을 ‘컴필레이션 뮤지컬’ 또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외국 작품으로는 스웨덴 출신 4인조 그룹 아바의 히트 곡들로 만든 ‘맘마미아!’나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들로 만든 ‘올슉업’이 대표적. 올해 들어 국내에서도 이런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이 유행이다. 고 이영훈 씨가 작곡하고 가수 이문세 씨가 부른 곡들로 극화한 ‘광화문 연가’가 올 초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이달 들어 ‘온에어 초콜릿’ ‘늑대의 유혹’ ‘어디만큼 왔니’ 등 세 편이 동시다발로 개막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부쩍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뮤지컬 팬뿐만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까지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PMC프러덕션의 송승환 대표는 “늑대의 유혹은 처음부터 아시아시장을 노리고 K-pop을 활용한 뮤지컬로 제작했다. 아시아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노래들로 구성해 외국인이라도 극을 따라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릿 라이프’의 성재준 연출은 “DJ DOC의 음악은 10년 넘게 다양한 세대에 폭넓게 인기를 끌었다. 그런 음악적 힘에 스토리가 갖는 힘을 더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창작이 아닌 기존 곡을 사용하기 때문에 작품 제작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측면도 있다. 특히 한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여러 가수의 다양한 노래를 사용하는 뮤지컬의 경우 스토리에 맞는 곡을 골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곡을 활용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잘 만든 이야기가 더해지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기존 곡의 분위기와 틀에 얽혀 이야기 전개가 제한받기 쉽다. ‘맘마미아!’ 정도를 제외하고 극적인 완성도가 높은 주크박스 뮤지컬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배우가 공연에서 자기 색깔을 내기도 어렵다. ‘온에어 초콜릿’에서 여주인공 김순정을 연기하는 오주은 씨는 “이미 아는 노래여서 익히기는 쉬워도 기존 가수의 가창 스타일에서 탈피해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주효선 인턴기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예술경영)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