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경제부 기자
폭우와 산사태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28일 오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몇 시에 퇴근하느냐고 기자가 묻자 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가 큰 상황에서 장관이 5시에 퇴근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는 눈치였다. 박 장관은 27일 공공 부문의 ‘8시 출근, 5시 퇴근’ 근무를 강조하면서 솔선수범하겠다며 유연근무를 신청했다. 유연근무를 신청한 첫 장관이 된 것이다. 하지만 박 장관은 오후 6시 넘어 끝난 청와대 회의 때문에 첫날부터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정부 안팎에서는 ‘8-5 근무제’에 대해 “출근만 빨라지게 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박 장관의 ‘쇼맨십’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물론 박 장관이 매일 5시에 퇴근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초과근무를 하는 날이 있더라도 되도록이면 ‘8-5시’에 맞춰 근무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은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현재 재정부에서만 100여 명이 유연근무를 신청했지만 예산실 직원 70여 명은 ‘10-7시’로 신청해 박 장관의 8-5 근무제와는 거리가 있다. 인사과 관계자는 “부처 예산심의를 하는 예산실 직원 대부분이 밤 12시 무렵 퇴근한다”며 “새벽 3, 4시까지 일한 직원들이 10시에 출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 등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다. 출근시간을 오전 7∼10시로 하고 점심시간을 포함해 9시간 근무하고 있지만 이른 시간에 출근해도 퇴근을 일찍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박 장관이 내수를 활성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유연근무제 정착에 노력하려는 취지에는 공감이 간다. 하지만 본인이 실행에 옮기기 전에 제도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고려했어야 한다. 박 장관의 솔선수범이 섣부른 실험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형준 경제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