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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빨리빨리’ ‘대충대충’ 문화 장-단음 구분 모호해지며 형성돼”

입력 | 2011-07-29 03:00:00

한국어문회 학술대회
“젊을수록 장음 짧게 발음”




우리말의 말하기와 듣기에서 한 음절이 길게 발음되는지, 짧게 발음되는지는 의미를 구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노인을 공경한다’는 뜻의 경로(敬老)에서 ‘경’은 장음(長音)이지만 ‘지나간 길 또는 일이 진행되는 순서’를 의미하는 경로(經路)의 ‘경’은 단음이다.

한국어문회(이사장 김훈)가 29일 서울 서초구 한국어문회관에서 여는 ‘국어교육과 한국어의 발음’ 학술강연회는 장음이 짧아져 단음과의 구분이 모호해진 우리말의 실태와 그 폐해를 살펴보고 올바른 발음 교육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날 발표자로 나서는 박경희 전 KBS 아나운서 실장은 발표문 ‘방송언어의 운율적 특성에 대한 고찰’에서 “전문가인 아나운서들도 연령대별로 장·단음을 구사하는 데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40, 50대 아나운서들이 20, 30대 아나운서에 비해 장음을 두 배 가까이 더 길게 발음한다는 것. 예를 들어 ‘전통’의 ‘전’(단음)과 ‘전쟁’의 ‘전’(장음)을 발음할 때 20대 아나운서의 단음 길이가 ‘1’이라면 장음은 ‘1.58’이었지만 50대 아나운서의 경우 단음의 길이가 ‘1’일 때 장음은 ‘2.23’이었다. 박 전 실장은 “장음을 더 길게 발음해야 듣는 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신뢰감도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발표자인 이규항 전 KBS 한국어연구회장도 “장음은 단음에 비해 점잖고 격이 있다. 장음이 짧아지는 건 변별성 여부를 떠나 아름다운 음율 언어로서 국어의 품격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이는 국어학계가 발음을 경시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발음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강연회를 기획한 한국어문회 박광민 연구위원은 “장·단음은 한국어의 고유한 특성이므로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없어질 수는 없다”며 “우리말에서 장음이 없어지면서 ‘빨리빨리’ ‘대충대충’ 문화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세계에 유례없는 성급한 민족이 된 이유”라고 말했다. 박 전 실장도 “안정된 사회가 되고 국민의 지적 수준이 높아진다면 우리말의 본질에 맞는 말을 구사하는 게 더욱 중요해진다. 제대로 된 국어 말하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