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님은 35년전 나의 짝사랑”“왜 이제 왔나… 너무 소중한 인연”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가 1976년 찍은 이철원 대령(위 오른쪽)의 중학교 1학년 시절. 이대령은 “이 사진이 졸업사진을 제외하고 중학교 시절에 찍힌 유일한 사진”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최근에 둘이 만나 다시 찍은 사진. 사진 출처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 블로그
그 학생은 영어교사로 온 열 살 연상의 ‘스티븐스 선생님’을 짝사랑했다. 키가 큰 금발의 외국인 선생님은 ‘별나라에서 온 공주님’이었다. 선생님은 항상 웃었고 상냥했다. 또 매력적이었다. 학생은 선생님이 퇴근할 때 하숙집으로 모셔 드렸다. 구멍 난 양말 사이로 삐죽 나온 자신의 발가락을 보며 유쾌하게 웃던 선생님이 정말 좋았다.
선생님은 그해 여름 충남 부여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학생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 선생님을 꼭 다시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2008년 스티븐스 대사가 한국에 부임했을 때부터 이 대령은 대사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역 장교로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 대령은 얼마 전 스티븐스 대사가 이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나’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 스티븐스 대사에게 연락했다.
연락을 받은 스티븐스 대사는 흔쾌히 이 대령을 대사관으로 초청했다. 이 대령은 짝사랑했던 선생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8일 옛 스승과 제자는 3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옛 제자는 스승에게 35년 전 짝사랑했던 사실을 처음 고백했다. 옛 스승은 수줍게 웃었다. 제자에게 “왜 이제야 왔느냐”고 여러 번 말했다.
이 대령은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키우는 삽살개 두 마리 중 하나의 이름이 ‘무심(無心)’이라며 인연과 무심이란 말을 미국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 대령과의 만남을 소개하며 “한국에 부임한 지 3년이 돼가면서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인생은 놀라움으로 가득 찬 것 같다”며 기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