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전문기자
노르웨이서 야만적 테러 충격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중략)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신동엽의 ‘산문시1’)
21세기 십자군을 자처한 광신주의자는 자신의 종교를 모독하는 씻기 힘든 죄를 범했다. 테러범의 궤변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선행을 통해 표현된다고 가르친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말이 떠오른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되도록 오랫동안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라.’
세상을 향해, 타인을 향해 선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이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이달 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76세 생일 기념 법회에서 “내 평생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모든 이의 삶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열린 마음과 연민이 착한 영혼들의 세상을 만드는 첫 발자국이 아닐까 싶다. 그의 기도문을 다시 새겨본다.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나를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내가 큰 희망을 갖고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 때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그리고 나로 하여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도움과 행복을 줄 수 있게 하소서./남들이 알지 못하게 모든 존재의 불편함과 고통을 나로 하여금 떠맡게 하소서.’
지금 난 어떤 얼굴로 살고 있을까?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길러지고 있었는데/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대문짝만 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찔끔 놀라게 하는데/오늘날 우리도 때마다/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구상의 ‘가장 사나운 짐승’)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