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뒤 정치]문재인과 서병수, 40년 지기의 엇갈린 운명

‘똥구두’ 신고 공차던 절친, 다른 길 걷지만 “친구 아이가…”

“재인 씨, 나 병수인데 잘 지내나?” 비가 세차게 내리던 27일 오후 서병수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40년 지기와의 추억을 떠올리다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두 분이 고교시절 같은 반이 된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직접 물어보지 뭐”라며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두 사람은 통화에서 1, 2, 3학년 담임선생님의 성함을 맞춰봤다. 서 의원은 “어라. 너랑 나랑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네. 영도에서 같이 학교를 다니다 보니 같은 반이라 생각했구먼”이라며 웃었다. 나이 들어 이름만 부르기가 민망해 ‘재인 씨’ ‘문 실장’이라고 한다던 서 의원은 금세 반말로 대화를 나눴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서 의원. 두 사람은 1968년 입학한 경남고 25회 동기다.

2011년 현재 문 전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킴이’를 거쳐 야권의 잠재적 대선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서 의원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몫으로 최고위원까지 지낸 3선 의원이다.

지금은 다른 정치적 행로를 걷고 있지만 40여 년 전 두 사람은 함께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절친’이었다.

두 사람은 당시 유행하던 ‘똥구두’를 신고 공을 차는 것을 즐겼다. 당시엔 선배에게 물려받은 헌 군화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두 사람은 “축구를 곧잘 했다”며 서로의 실력을 인정했다.

학교 성적은 둘 다 ‘중상’ 수준이었다. 문 전 실장은 서 의원을 “또래들보다 어른스럽고 점잖았다”고, 서 의원은 문 전 실장을 “의리 있고 밝은 성격이라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인문계반이 3개 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같은 반이 아니라도 친하게 지냈다. 박종웅 최철국 전 의원, 박맹우 울산시장 등이 경남고 동기들이다.

경희대(문 전 실장)와 서강대(서 의원)로 진학한 두 사람은 연락이 끊어졌다가 1980년대 후반 다시 만났다. 문 전 실장은 인권변호사로, 서 의원은 사업가로 부산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서 의원은 회사를 경영하다 노사 문제가 발생하면 문 전 실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곤 했다.

문 전 실장은 서 의원이 2000년 해운대구청장, 200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땐 동기들과 함께 선거유세장을 찾아 ‘박수부대’를 자원하기도 했다. 그랬던 두 사람의 길은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엇갈리기 시작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둔 어느 날 문 전 실장은 서 의원을 찾아왔다. “네 지역구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최인호 씨가 나오는데 괜찮은 사람이야. 잘 키워줘….” 어렵게 말을 꺼낸 문 전 실장은 더는 서 의원의 선거유세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서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봉하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여권 인사들의 조문을 막아 입장할 수 없었다. 서 의원은 버스에서 문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도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성의를 잘 받아들이겠다”는 답변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엇갈린 정치행보에 대해 두 사람은 “공은 공이고 사적인 인연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다”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문 전 실장의 자서전 ‘운명’에는 훗날 잘된 친구로 ‘서병수’의 이름이 나온다. 두 사람은 그날 통화에서 정치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다만 서 의원은 “잘 판단해서 잘 하소”라며 전화를 끊었다. 엇갈린 ‘운명’ 앞에서 막역지우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적 조언이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