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올 1월 재러드 러프너가 미국 애리조나 주 투손에서 개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을 총으로 쐈을 때도 러프너가 ‘무슬림, 자유주의, 유대인 기퍼즈로부터 미국을 회수하자’는 슬로건으로 뭉친 광적인 증오와 상관없는 혼자만의 세계관을 가진 정신분열 외톨이라고 묘사한 우파들이 있었다. (하지만) 브레이비크는 단순한 외톨이가 아니다. 그의 폭력성은 러프너의 미국과 비슷한 성격의 유럽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인종차별적 생각을 갖는 이슬람 혐오자들은 경제 쇠퇴, 실업, 많은 이민자의 유입을 근거로 들면서 ‘(이것은 모두) 무슬림의 장악(때문)’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을 만들어냈다. 이런 좌절감을 세(勢)를 불리는 정치적 이슈로 삼기도 했다.
브레이비크는 범행 직전 온라인에 띄운 ‘2083 유럽독립선언’ 6월 11일자 메모에서 “오늘 처음 아주 오랜 시간 기도했다. 마르크시스트와 이슬람의 동맹을 막고 수백 년 안에 유럽 기독교 세계를 전멸시키려는 이슬람의 유럽 탈취를 저지하려면 신께서 유럽 기독교 세계의 우월성을 유지하려는 전사들의 전투를 지켜줘야 한다”고 했다.
이번 오슬로와 우퇴위아 섬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게 있다. 망상에 빠진 반(反)무슬림 우파의 증오가 다문화주의 자유주의자들을 겨냥할 때 알카에다의 이교도 배척만큼이나 유해하다는 점이다. 브레이비크 혼자서 2005년 이슬람 테러범 4명이 벌였던 런던 자살폭탄 테러 사상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대서양 양안에는 브레이비크의 이념적 동지가 많다. 이들이 브레이비크의 적개심을 연마시킨 독소다. 꾸란(코란·이슬람 경전)을 ‘나의 투쟁’(히틀러의 책)에 비교한 네덜란드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무슬림을 조롱할 때 나치를 인용해온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통령의 중간 이름 ‘후세인’(버락 후세인 오바마)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미 연방하원 의원 피터 킹 등이 그들이다.
무슬림은 지난 몇십 년간 그들의 종교를 왜곡한 이들(과격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 대해 별다른 비난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럽과 미국에서 반이민을 주장하는 이슬람혐오주의자들은 브레이비크가 이데올로기의 기치 아래 저지른 일을 비난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린 아마도 그가 얼마나 외톨이였는가에 대한 얘기만 들을 것 같다.
지금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사회 문제들은 지난 몇십 년간 늘어난 무슬림의 유럽 이민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종종 인종 차별을 당하고 배척됐다. 한때 유럽 유대인들을 위해 묵인되어 오던 ‘반이슬람’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인종차별주의자와 살기에 찬 유럽 극우파들로부터 ‘퇴화된 국제적 쓰레기’라며 한때 예술성을 배척당했던 유대인 소녀 에이미 와인하우스(23일 27세의 나이로 영국 런던에서 숨진 채 발견된 팝스타)가 숨진 지난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를 진정으로 기억하는 좋은 방법은 유럽의 편협과 광신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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