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반긴 것은 살인적 더위였다. 섭씨 55도. 신부님이 보여주시는 온도계의 숫자를 보고 온도계에 50도 이상의 눈금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햇볕이 옷을 뚫고 살을 태우는 느낌이다. (중략) 톤즈 강은 흙탕물이었다. 아이들이 첨벙첨벙 들어가기에 물장난하려나 했더니 허리를 구부려 그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울지 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를 후원했던 이재현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관이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근무할 때 남수단 톤즈를 방문하고 쓴 기록이다(‘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1년 만인 1956년 수단은 2세기에 걸친 영국과 이집트의 공통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했으나 새로운 비극이 잉태되고 있었다. 북부지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슬람교도들이 까만 피부에 기독교인이 많은 남부 종족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남부에는 도로 하나 깔지 않고 벽돌 한 장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남부 종족들이 시민반란을 일으킨 지 10년 만에 남부 자치를 위한 평화협정의 물꼬가 트였다.
▷1978년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일주일 전, 그동안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던 남수단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북부 정부는 남부에 자치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휴지로 만들었다. 북부 정부는 남부 독립 무효화와 함께 남부 주민을 이슬람교도로 개종시킨다는 내용의 이슬람법을 통과시켰다. 일종의 ‘인종청소법’이었다. 남부인들은 가족 중에 남자 한 명씩은 무조건 군인으로 보내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것이 아프리카에서 영토가 가장 넓고 자원이 풍부한 수단이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전락하게 된 배경이다.
▷30년 내전 끝에 남수단이 7월 9일 남수단공화국으로 독립하고 193번째 유엔 가입국이 됐다. 남수단의 재건을 돕기 위해 우리 정부가 평화유지군과 함께 경찰부대 파병(派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티 단비부대, 레바논 동명부대 등 8개국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고 있다.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남수단은 고속성장을 이룬 한국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 군경의 평화 유지 활동이 톤즈 주민들의 얼굴에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면 이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