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행사진행…어설픈 호러 요소 첨가●저지선 밖으로 고립된 팬들…사진촬영에 급급한 주최측●연예인 축하객들조차 앉을 곳이 없는 공간
"영화 '기생령' 개봉기념 호러 파티에 초대합니다!"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 '커피하우스-페이지원'에서 열린 행사의 홍보 문구다. 주최 측은 '기생령 스페셜 영상 공개', '스타들과 팬들을 초대해 티아라(T-ara) 멤버들이 직접 다과를 준비하고 서빙하는 행사'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현장은 주최 측의 말과는 달랐다.
▶MC 보라는 말은 현장와서 처음 들었다
‘기생령 호러파티’ 현장을 방문한 연예인들.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이날 MC를 맡은 티아라 효민의 말이다. 효민은 영화 '기생령'의 주연을 맡았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 중 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아역 배우 이형석뿐이다. 따라서 효민은 행사의 안주인인 셈이었다.
게다가 효민에게 "MC를 보라"는 말이 전달된 것은 현장 도착 직후, 행사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행사 장소인 '페이지원'은 지하1층-1층-2층으로 이루어진 카페다. 지하 1층은 스태프 대기실, 2층은 '손님'인 연예인 참석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되었다. 결국 무대는 음식을 제공하는 바, 지층 및 2층을 연결하는 계단, 팬 좌석, 무대 아래 기자석 사이에 있는 좁은 공간으로 제한된 것.
티아라의 멤버는 7명. 무대는 이들이 한 줄로 서기도 벅찼다. 티아라는 이날 여러 차례의 자리바꿈이 필요한 '왜 이러니'와 '롤리 폴리' 공연을 펼쳤다. 결국 자리를 바꿀 때마다 양쪽 끝에 있는 멤버들은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둥 뒤로 숨어야했다.
티아라는 결국 쟁반, 포크, 소스 등 주방용품을 곁들여 '롤리 폴리'를 한 번 더 공연했다.
▶'기생령 개봉 기념 호러 파티'의 정체는?
‘기생령 호러파티’ 현장에서 기념촬영 및 공연 중인 티아라.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손님으로 참석한 스타들의 발언은 두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개업 축하합니다. 영화 '기생령' 대박 나세요!"
이 행사의 목적은 스타들이 생각하는 대로 전자에 있었다. 이 행사는 사실상 코어콘텐츠미디어 김광수 대표와 티아라가 투자한 카페 커피하우스-페이지원의 '개업식'이었던 것.
총 3시간 30분에 달하는 공식 행사 중 이날의 메인 테마로 소개된 '기생령'을 위한 시간은 달랑 10분, 그것도 보도자료를 그대로 읽다시피 한 효민의 영화 소개 멘트가 끝이었다. 행사의 나머지 시간은 연예인 축하객들의 포토타임과 카페 개업 축하공연만으로 채워졌다.
이 행사에서 '호러 파티'의 요소는 단 하나, 분장한 몇몇 연기자뿐이었다.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스크림', '주온' 등의 공포영화 주인공으로 분장한 이들은 밝은 조명 아래 아무런 안내 없이 갑자기 등장,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그 임무를 다했다. 조명도, 무대 구성도, 소리도, 진행도 그들에게 그 어떤 '공포 요소'를 더해주지 못했다.
▶격리된 팬들, 불친절한 현장
‘기생령 호러파티’ 현장에 찾아온 티아라의 팬들.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이 행사에는 응모를 통해 선발된 20명의 팬들이 함께 자리했다. 10명의 팬을 뽑아 1명씩 동반하게 한 것. 구성원은 남자 18명과 여자 2명이었다.
고교생 조영빈 씨(18)는 "도서관에 있는데 친구한테 여기 당첨됐다는 전화를 받았다"라며 "거짓말 같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아하는 멤버는 효민"이라며 "공개방송 때 관객석에서만 보다가 가까이에서 보면 예쁠 것 같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손재익 씨(22)는 연방 사진을 찍으면서 "실제로 봐도 역시 은정누나가 제일 예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스타가 직접 준비하고 서빙하는 음식을 먹는' 기대는 깨졌다.
팬들은 무대 구석 테이블 6개 주변에 좁게 모여 앉았다. 티아라 멤버들은 카메라 앞에서 요리되어 나온 음식을 '서빙하는 시늉'만 했다. 일부 멤버들이 팬들에게 다가가 "저녁은 드셨느냐" 등 안부를 묻기도 했지만, 대부분 카메라 앞에서 포즈만 취한 뒤 다시 바(bar) 앞으로 돌아갔다.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팬들 주위에는 금줄이 쳐졌다. 팬들은 티아라와의 사진촬영 시간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8시까지 줄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무대 측면 자신들의 자리에서 좋아하는 스타의 공연을 관람해야했다.
그나마 티아라 멤버들과 가까운 위치에서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었던 이들은 행운아였다. 이 행사에 당첨되지 못해 행사장 밖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팬들은 더욱 힘들어했다. 이들은 초반 10여명에서 나중에는 40여명 가까운 숫자로 늘어났다. 행사 내내 비가 내렸지만, 이들은 가림막 하나 없이 우비나 우산을 쓴 채 열렬하게 환호했다.
홍콩에서 온 룬 씨(21)는 "티아라 때문에 한국말을 배웠다"며 "한국에 온 것은 두 번째다. 티아라 2주년이라서 왔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행 4명 모두 티아라 팬이라며 '티아라 HK'라고 쓴 플래카드를 열심히 흔들었다. 룬 씨는 "외국인이라서 다음 ID를 만들지 못해 행사를 신청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티아라가 행사 끝나고 나가는 모습까지 보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효민을 위한 플래카드를 들고 온 저스틴 씨(30)는 나이를 묻자 무척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효민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까지 붉어지며 좋아했다. 그는 "음악도 좋고 춤도 좋지만 예능프로그램 '청춘불패'(KBS)가 제일 좋았다"라며 "효민이 거기서 정말 귀엽게 나왔다"라고 말했다. 곁에 서 있던 여고생 하 모 양(19)은 "고3이라 이젠 오지도 못한다"라며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너무 적어 속상하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 행사 개요에 대해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 진행 요원들은 그저 팬들의 앞을 가로막을 뿐이었다. 그들은 티아라의 공연이 언제 시작되는지, 티아라가 언제 퇴장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빗속에서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릴 뿐이었다.
기자가 "이 행사는 언론 인터뷰를 포함해 공식 스케줄은 밤 10시에 끝난다"라고 알려주자 대부분의 팬들은 "그렇게 늦게 끝나느냐"라면서도 "그래도 가는 것까지 보고 가겠다"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날 현장에는 시크릿, 채시라-김태욱 부부, 김완선, 고준희, 홍석천, 윤다훈, 조동혁, 김성경 아나운서, 전현무 아나운서, 파이브돌스 등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티아라와 다비치, BGH to 등의 축하 공연이 시작되자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1층에는 팬 석을 제외하면 이들조차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결국 주최 측은 무대 아래의 기자용 테이블 10개 중 3개에서 기자들의 물건을 치우고 이들에게 내줬다. 하지만 홍석천, 채시라 등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서서 공연을 감상하거나, 현장을 떠났다. 축하공연이 모두 끝난 8시, 2층 연예인 대기석에 남아 있던 사람은 티아라와 파이브돌스, BGH to뿐이었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사진|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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