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 격랑 중에 청년남녀의 정사(情死)-극작가와 음악가가 한떨기 꽃이 되어 세상 시비 던져두고 끝없는 물나라로.’
1926년 8월5일자 동아일보에 대서특필된 두 남녀의 동반자살 기사 제목이다. 극작가는 김우진, 음악가는 윤심덕으로 이들의 죽음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대 사건이었다.
그해 오늘 새벽,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등 뛰어난 문인으로 활동한 김우진이 일본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부관연락선에서 뛰어내렸다. 봉건의 시대를 뛰어넘는 문화적 진보주의자이었을 두 사람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가난하지만 불꽃 같은 사랑을 그렇게 영원 속으로 몰고 갔다.
두 사람은 극예술협회 활동을 함께 하며 사랑을 쌓아갔다. 하지만 윤심덕은 가난의 힘겨움 속에서 장안의 갑부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고 김우진은 이미 아내와 자식을 둔 상태였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식민의 척박한 문화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예술혼을 꽃피우며 사랑을 이어갔지만 식민과 봉건, 자신들을 향한 멸시와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동반자살 직전 윤심덕이 일본에서 내놓은 앨범 속 ‘사의 찬미’는 이바노비치의 곡 ‘다뉴브강의 푸른 물결’을 직접 번안한 것으로, 이들의 죽음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10만장이 팔려나갔다. 이 노래를 한국 대중가요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후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