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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음식이야기]매운탕

입력 | 2011-08-04 03:00:00

조선시대 왕의 수라상에 오른 ‘끓여먹는 별미’
13세기부터 고려인 즐겨… 초기엔 향신료 넣고 끓여




바닷가로 계곡으로 휴가를 떠나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가 생선회이고 매운탕이다. 회를 뜨고 남은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여도 맛있고 계곡 주변에서는 민물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어도 별미다.

의식을 못해서 그렇지 한국인 대부분은 매운탕 애호가다. 생선을 넣고 끓인 국이나 찌개는 무엇이든 좋아한다.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끓인 매운탕뿐만이 아니다. 일본말로 ‘지리’라고 하는 맑은 생선국도 우리 입맛에 맞는다. 제철 생선으로 끓이는 다양한 생선찌개 역시 우리 밥상의 단골 메뉴다.

한민족이 매운탕을 잘 먹는다는 소문은 먼 옛날부터 국제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고려인들이 생선 끓인 국을 잘 먹는다는 말이 13세기 원나라에 알려졌는데 황제인 세조 쿠빌라이 칸이 특별히 이를 언급했을 정도다.

고려 충렬왕 때의 장군 김방경이 원나라의 일본 정벌에 참여했다. 원정군이 출발하기 전, 원 황제 세조가 김방경에게 ‘고려국도원수’ 칭호를 내려주며 잔치를 베풀었다. 진귀한 음식이 가득한 가운데 특별히 김방경 장군을 위해 하얀 쌀밥과 생선국을 차려주며 황제가 직접 “고려인들이 좋아하는 음식(高麗人好之)”이라고 말했다. ‘고려사(高麗史)’ 김방경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1280년의 일이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세조, 쿠빌라이가 특별히 고려인의 입맛까지 언급하면서 별도로 생선국, 즉 매운탕을 차려 준 것은 출정을 앞둔 장수를 위로하는 세심한 배려였을 것이다. 뒤집어 보면 고려인이 생선국을 잘 먹는다는 사실이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말도 된다.

김방경 장군뿐만 아니라 고려 사람들은 대체로 매운탕을 많이 먹었던 모양이다. 역시 충렬왕 때 명신으로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저자인 추적 역시 생선국을 좋아했다. 추적은 성격이 활발하고 검소해서 언제나 말하기를 “손님을 대접할 때는 부드러운 쌀밥과 생선을 썰어 넣고 끓인 국이면 충분하지 어째서 많은 돈을 쓰면서 팔진미(八珍味)를 차릴 것인가”라고 했다고 전한다. ‘고려사’ 추적열전에 나온다.

그런데 13세기에 고려 사람들이 먹었던 생선국은 과연 어떤 음식이었을까.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생선을 끓이는 맑은 생선국을 먹었을 뿐 지금과 같은 매운탕은 먹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고추가 전해진 시기가 임진왜란 후인 16세기 말엽이니 고려의 김방경 장군이나 추적이 생선국을 먹었을 때보다 300년 이상이 지났을 때다. 그러니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풀어서 매운탕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고려 때도 우리 조상들은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다만 고추가 전해지기 전이니 고춧가루 대신 다른 향신료를 넣고 끓였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 이색이 지은 시에 “임금이 하사한 얼얼하고 매운 생선국(香辣雜羹魚)을 먹으니 배가 부르다”라는 구절이 있다. 향긋한 것이 얼얼하고 맵다(香辣)고 했으니 고추와는 다른 향신료를 넣고 끓인 생선국인데 고추가 전해지기 전 우리나라에서 향신료로 주로 사용했던 산초를 넣고 끓인 산초 매운탕이었을 것이다. 맛은 지금의 매운탕과는 달리 산초를 듬뿍 넣고 먹는 추어탕과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왕의 수라상에까지 생선 매운탕이 놓였으니 한국인의 매운탕 사랑은 그 역사가 넓고도 깊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