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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현대차와 기모노

입력 | 2011-08-04 03:00:00


푸치니의 3대 오페라 걸작 가운데 하나인 ‘나비부인’의 주인공은 일본 게이샤다. 190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 오페라로는 드물게 아시아 국가인 일본을 배경으로 삼았다. 일본보다 훨씬 국토가 넓은 중국은 푸치니의 유작(遺作) ‘투란도트’를 통해 1926년에 이르러서야 오페라 작품의 소재가 됐다.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에도 일본의 왕자가 등장한다. 1791년 작품이니 에도(江戶)시대였다. 일본에 가본 적이 없는 모차르트였지만 막연한 동경은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며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지구촌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항해하면서 20세기 아시아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올해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가뜩이나 침체돼 있는 일본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혀 표지 모델로 세웠다. 기사 제목은 더 걸작이다. ‘일본처럼 되기: 부채 채무불이행 그리고 서양의 마비된 새 정치.’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미국과 유로 통화권 붕괴 위기 앞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 독일을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일본으로선 모욕감을 느낄 만하다. 분명한 논점 없이 지루하게 진행된 미국 정치권 부채협상을 ‘가부키(歌舞伎·일본 전통연극) 같았다’고 평했다. 타협 정신을 잃고 벼랑 끝 대치를 거듭한 민주 공화 양당을 싸잡아 “소계파주의만 살아남은 일본정치를 배웠는지 지적 피그미가 됐다”고 꼬집었다. 일본을 ‘제일 나쁜 것’의 대명사로 묘사한 셈이다.

▷2000년대 중반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은 데 이어 현대자동차가 일본 제조업의 상징 도요타를 추월할 기세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세계시장 판매대수는 현대차 195만 대와 기아차 124만 대로 총 319만 대였다. 도요타는 301만 대(2일 도요타 공식집계)에 그쳤다. 세계 4위 자리를 내준 도요타는 자존심이 상했던지 어제 평소 포함시키지 않던 출자 비율 50%의 해외합작사 실적까지 보태 판매대수를 371만 대로 수정했다. 신뢰와 품질의 상징 일본제(日本製)의 신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