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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빛과 소금으로]서울 종교교회

입력 | 2011-08-05 03:00:00

새터민도 몽골인도 한 가족… 이방인은 없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뒤편의 종교교회는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시골교회의 소박한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 이 교회는 110여 년의 역사속에서 분열된 감리교단의 통합에 기여했고 이제는 소외된 이웃을 세상과 굳건하게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beanoil@donga.com

《교회는 울음바다였다. 300명의 ‘엄마’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힘겹게 업고 있는 앳된 얼굴의 엄마들과 머리가 희끗한 엄마들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널 내 딸로 맞으마.” 한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여기저기서 “엄마”를 외치며 너나할 것 없이 눈물을 터뜨렸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뒤편 종교교회(감리교)에서는 특별한 ‘친정엄마 결연식’이 열렸다. 탈북 과정에서 남편이 오지 못해 싱글맘이 된 여성 150명이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새 친정엄마를 맞았다. 박홍자 씨(68)는 새 딸과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고 최근에는 여행도 다녀왔다. 박 씨는 “친정엄마라는 게 특별할 게 있느냐”며 “늘 곁에 있어주고 요즘처럼 비올 때는 함께 부침개도 해 먹는다”고 말했다. 의지할 곳 없는 탈북 싱글맘에게 새 친정엄마는 큰 버팀목이다.

도심 빌딩 사이, 이 교회의 이름은 종교(宗敎)가 아닌 종교(宗橋)교회였다. 으뜸다리라는 의미로 신자들 사이에선 ‘다리교회’로 불린다.

1900년에 개척돼 지난해 110년을 맞은 이 유서 깊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한국사회에 전파해왔다. 특히 선교와 사회봉사를 통해 싱글맘과 다문화가정을 우리 사회에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최이우 담임목사

“사력을 다해 넘어온 남한 땅에서 남편도, 엄마도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결연식 전에 굳었던 탈북 엄마들의 마음이 ‘내 딸’이라는 말 한마디에 녹아내렸답니다.” 최이우 담임목사(59)의 말이다.

몽골근로자 80여 명도 이 교회를 자주 찾고 있다. 이들은 아이들을 맡길 마땅한 이웃이 없거나 언어 때문에 양육에 어려움을 겪었다. 교회는 이 같은 사정을 듣고 위탁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교회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소박함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이다. 매주 2000명이 넘는 교인이 출석하지만 2층으로 된 예배당은 시골교회처럼 소박하다. 설교를 하는 강대에는 흔한 꽃꽂이 하나 없이 나무십자가와 교인들이 돌아가며 손으로 직접 쓴 성경책만 놓여 있다.

“종교교회는 도심 속 시골교회 같아요. 역사도 오래됐지만 무엇보다 탈북자와 다문화 섬김을 통해 묵묵히 ‘아버지 교회’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사무총장인 김종생 목사의 말.

담임목사도 좀처럼 교회 자랑을 하지 않았다. 최 목사는 줄곧 “다들 하는 일”라며 웃기만 했다.

최근 종교교회에서 열린 친정엄마 결연식에서 탈북자 출신 싱글맘들과 남한의 새 친정엄마들이 포옹하고 있다. 종교교회 제공

교회는 지난해 110주년 기념식을 예배만으로 조촐하게 치르는 대신 각막 이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을 도왔다. 인근 실로암안과에 6400만 원의 후원금을 내 100여 명이 수술을 받고 시력을 되찾았다. 최 목사는 “교회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외에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화로운 교회 건물 속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일부 대형 교회와 비교할 때 종교교회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습도 없고 이권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전임 목회자는 최 목사에게 교회를 맡기고 노인선교에 힘을 쏟는 작은 교회를 개척했다.

“앞으로도 종교교회는 사람과 하나님의 사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런데 다들 하는 일인데요(웃음).”(최 목사)

현재 감리교단은 2009년 교단 최고지도자인 감독회장 선거의 후유증으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물었더니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부끄럽고 아픈 현실이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감독회장의 임기가 곧 끝나면 자연스럽게 갈등의 중심에 선 분들이 물러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더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겁니다. 상처가 있다면 숨기지 말고 치유해야 곪지 않습니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최이우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나원용 목사▼
은퇴 후 노인선교 힘쓰는 모습 감동


전임 담임목사 나원용 목사(79·사진)는 은퇴 후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 ‘늘 푸른 교회’를 개척해 노인 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다음은 최이우 목사의 편지글이다.

존경하는 나원용 목사님.

7년 전 저녁이나 먹자고 우리 부부를 불러 손수 쓴 축하카드를 주며 “최 목사, 생신을 축하해. 나보다도 목회 더 잘해줘 너무 고마워”라고 한 말씀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감격하는 제게 “우리는 가족이잖아”라고 하신 것도 너무 행복한 기억입니다.

2003년 종교교회 22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들은 목사님 말씀이 예수님 말씀 같았습니다. “선한 목자로서 주님의 양들을 잘 돌보아라.” 교회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옆에서 111년을 지내왔지만 ‘도심 한가운데 있는 시골교회’ 같은 가족적 정서가 흐르고 있는 것은 원로목사님께서 27년을 사랑으로 성도들을 돌보신 열매입니다.

나 목사님, 은퇴하신 후에 종로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내시고 노인 선교센터를 운영하면서 여러 일을 하시지요. 무엇보다 은퇴 목사님 부부를 위해 처음 20여 명으로 시작하신 늘 푸른 교회에서 지금은 100여 명이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도 은퇴하면 목사님 계신 교회로 가렵니다. 10년 후 꼭 저를 후임 목사로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 아호(雅號)인 범송(凡松)처럼 평범하게 사시는 것 같으나 항상 푸르고 당당해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시는 목사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