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비마다 흔들리는 제자 다독여주신 스승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의대에 들어가 신경과 전공의가 되어 보니 여기에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 같은 분이 계셨다. 나는 인생의 길목마다 만나는 많은 사람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서울대 신경과 과장으로 계셨던 명호진 선생님은 남성다움과 엄청난 주량을 자랑하셨고, 보스답게 한 무리의 전공의들을 늘 끌고 다니셨다. 이상복 선생님은 존경할 만한 학자였지만 소극적이었고 안 보이게 과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셨다. 신경과 전공의 시절은 재미있었지만 어릴 적 우리 집안만큼 소란스럽기도 했다.
전문의를 취득하고 첫 근무처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명종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은 선천적 질환으로 몸이 불편하셨지만 존경할 만한 의사이며 학자였다. 지금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시지만 선생님이 걸을 수 있었을 때 나는 그분의 손을 잡아 걷는 걸 도와드리곤 했다. 그때 남들이 쉽게 걷는 약간의 바닥 경사가 그분에게는 얼마나 힘든 시련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언제나 환자의 불평을 듣고 이를 해결해주려 노력하셨다. 그리고 나를 따스하게 배려해 주셨다. 한 번은 선생님이 학회 이사장직을 권유받았는데 고사하셨다. “내가 이사장이 되면 김종성이 총무를 맡아야 하는데, 그러면 이 친구가 (바빠서) 공부를 못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분의 배려 속에 나는 학문적으로 커갈 수 있었다.
어느덧 시니어 교수가 된 지금, 나는 오히려 후배나 제자들로부터 더 많이 배우고 있다. 학문의 경험이 나보다 적은 이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뛰어난 업적을 이루면 이들을 존경하게 된다. 엄청난 일을 하면서도 여유 있는 제자도 나에게 감명을 준다. 아산병원의 강중구 교수는 내가 뽑은 신경과 첫 번째 전공의였다. 당시 전공의가 한 명뿐이니 365일 당직해야 했고 혼자서 그 많은 환자를 돌봐야 했다. 혹독한 업무량이었다. 혹시 병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매일 아침 걱정스레 의국(醫局) 문을 열어보면, 늘 나보다도 더 생생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나를 반기곤 했다. 내게 영향을 준 사람으로 내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수는 작년 유학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자신이 작사 작곡한 힙합 CD를 완성해 떠나는 길에 나에게 내밀었다.
작년 국제학회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니 체코 의사가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강의하시는 모습이 캐플런 교수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TV에 방영된 나의 뇌중풍(뇌졸중) 강연을 본 아버지의 옛 변호사 사무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님이 법정에서 변론하시던 모습 그대로던데요.” 싫든 좋든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닮아가나 보다. 남아있는 날들, 나 역시 남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김종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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