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의 세계/김문경 지음·송완범 신현승 전성곤 옮김/544쪽·2만5000원·사람의무늬
최병욱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HK연구교수(왼쪽)
시기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삼국시대는 삼국 간의 항쟁기인 동시에 정치 사회적 격변기이기도 했으며, 예술 역시 풍성했던 시기다.
그것은 제2의 춘추전국시대였다. 난세의 시기였기에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활약하고 다양한 문화와 유교 불교 도교가 함께 병립하던 시기가 바로 삼국시대였다.》
삼국시대는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를 핍박하여 후한의 문을 닫게 하고 위나라 황제에 오른 220년부터 사마씨에게 정권을 탈취당한 265년까지를 말한다. 물론 이것은 위나라를 정통에 둔 역사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나라는 280년 멸망하기까지 삼국 중 가장 오래 유지되었지만 삼국시대의 정통성 논쟁을 비롯해 역사의 평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오나라가 삼국에서 제일 존재감이 없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 ‘삼국지’)의 영향이다. 삼국지연의는 촉을 정통으로 서술하고 위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 결과 오나라는 아웃사이더로 밀려났다. 또 역사가 진수의 ‘삼국지’는 위를 정통으로 하여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역시 오나라는 삼국 역사의 변방으로 취급되었다.
‘삼국지연의’는 설창문학(說唱文學), 즉 노래와 대사가 엇섞여있는 체제의 문학에서 발전한 소설이다. ‘삼국지연의’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에 의해 쓰인 것으로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있는 팩션(faction)이다. 따라서 역사적 오해나 지리적 혼란에 대한 허점은 소설 곳곳에 드러난다. 따라서 이 책 ‘삼국지의 세계’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와 역사가 진수가 쓴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 사이를 오가며, 허구의 그림자에 뒤덮이거나 기술자의 의도를 좇아 각색되었던 역사적 진실의 원형을 회복해낸다.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서술됐다. 하나는 현재 동아시아 삼국(한중일)의 현재적 시각에서 삼국시대를 새로이 바라보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오나라의 관점에서 본 ‘삼국지’를 쓰는 것이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세계의 동질성과 다양성의 출발점이 삼국시대이며, 따라서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서 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고 동아시아의 장래를 전망하고자 한 것이다.
삼국시대는 분열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중국의 외연이 확대된 시기이기도 했다. 오나라의 강남 지배로 이러한 점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된 화북지방의 연이은 전란으로, 많은 유민이 오나라의 수도였던 지금의 난징(南京)을 중심으로 한 강남지방으로 이주하였다. 강남지방은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중원의 선진 농업기술이 이식되어 농업생산력이 높아졌고, 운하망을 정비한 데 따라 상업과 수공업도 크게 발달하며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오나라에 의한 강남지방의 발전은 후에 서진이 오호(五胡) 세력에 밀려 남하하면서 송제양진(宋齊梁陳)의 남조(南朝)를 세우는 기틀이 된다.
중국의 삼국시대는 한반도에서 고구려 신라 백제라는 삼국시대의 초기 국가형태가 나타나고 일본에서도 국가 형성의 시초가 나타난 시기와 겹친다. 이 시대는 한반도, 일본의 여러 나라가 중국과의 교섭을 모색하였고, 문화적 교류가 시작되는 이른바 동아시아 국제교류의 서막이 오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중국 삼국시대의 아웃사이더로 평가받던 오나라는 현실적인 외교 감각을 발휘하며 위나라, 촉나라와 동맹관계를 맺고 동아시아 국가들과도 국제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책은 소설 삼국지를 단서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삼국시대 역사를 재구성해 낸다. 딱딱한 삼국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다뤘음에도 책은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초반부터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면서 소설 삼국지와 결별해야 한다고 하지만, 줄곧 소설과 헤어지지 않으며 지근거리에서 소설과 서로 이야기하며 서술하고 있다. 평이한 번역체와 함께 독자들을 위한 배려로 주요 인물 약전과 역사 핵심어 해설, 그리고 연표를 따로 넣은 역자들의 따뜻한 노고도 엿보인다.
최병욱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