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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기 걷던 19세기 조선 양반 수명 6년 짧아졌다

입력 | 2011-08-08 03:00:00

전주 이씨 무안대군파 등 9개 가문 족보 분석 논문




《쇠락의 길을 걷던 19세기 조선 양반들이 이전이나 이후 시기보다 오래 살지 못했음이 수치로 파악됐다. 족보를 분석한 결과 19세기 조선 양반 남성의 평균수명이 53세인 반면 18세기 및 20세기 전반에는 보통 58세나 59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결과는 박희진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초빙교수와 김두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 전주 이씨 무안대군파 등 9개 가문의 족보에서 1700년부터 1945년 사이에 게재된 인물의 생몰(生沒) 연도를 통해 조선 후기 및 일제강점기의 인구 현상을 분석한 논문 ‘족보에 나타난 사망력(死亡力)’에서 밝혀졌다.》

이 논문은 4, 5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과 계명대 동산도서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족보의 특성과 연구과제’라는 주제의 한국학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논문에 따르면 18세기 말부터 19세기(1780∼1899년)까지 20세 양반 남성의 기대여명(期待餘命)이 평균 32.58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18세기(1700∼1779년)와 일제강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세기 전반기(1900∼1945년)는 같은 대상의 기대여명이 평균 38∼39세였다. 여기서 사망력은 연령별 사망률을, 기대여명은 사망력 분석을 통해 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 몇 년 더 생존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예상수명을 뜻한다.

논문에 활용된 9개 가문 족보에는 총 5만3487명의 남성이 수록됐다. 두 연구자는 이 중 출생과 사망연도 기재율이 높은 적손(嫡孫) 가계(총 1만8333명)를 중심으로 분석해 신뢰도를 높였다. 여기에 1925년부터 1940년까지 일제가 5년마다 실시한 인구통계 같은 시기 족보의 사망력을 비교 분석한 결과 두 자료가 거의 유사한 추세를 보였다. 즉, 특정 가문 사람들을 연구한 것이지만 여타 양반 및 일반 백성도 큰 틀에서는 비슷한 경향을 보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두 연구자는 18세기 사망력이 농사의 풍흉 여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 반면 19세기는 풍흉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회지배층인 양반이 흉년으로 굶어죽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흉년이 들어 가난한 계층에서 사망자가 많아지면 전염병이 유행함에 따라 양반의 사망력도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풍흉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사망력이 지속적으로 높다는 건 19세기 조선사회가 만성적인 기근 상태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박 교수는 “18세기 말 이후 농업생산력이 인구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통치체제와 경제시스템마저 붕괴됐다. 양반도 사회변동으로 수가 점차 늘면서 일반 백성 못지않게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높은 사망력과 낮은 기대여명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반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망력이 낮아진 것은 경제적 상황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우두 접종 등 서양의학의 도입으로 유아사망률이 감소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성균관대와 계명대가 공동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는 동아시아 각지의 족보를 비교사적으로 검토해 한국 족보의 특성을 새롭게 인식하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했다. ‘고문서를 통해 본 족보 간행 과정상의 분쟁’ ‘족보에 나타난 성씨 이주와 지역의 역사’ 등 족보를 둘러싼 조선시대의 흥미로운 사회현상을 분석한 논문이 다수 발표됐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