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은 초조하다. D-93.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까지 남은 날이 두 자릿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짧게는 고등학교 3년, 길게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12년 노력이 결실을 맺는 최종 관문을 앞두고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 어찌 모르랴! 한 고3이 ‘나에게 쓰는 편지’를 보내왔다. 대한민국의 학생으로 살아온 지난 시절의 고민과 꿈을 찾게 된 과정, 스스로에게 건네는 격려가 담겨 있다. 부산 광명고 3학년 박병규 군(18)이 수능을 앞두고 자신에게 쓴 편지를 소개한다.》
어느덧 대망의 수능이 93일 앞으로 다가왔네. 무더운 날씨에도 모두가 수능 공부에 매진하는 이때 수시 입학사정관전형 원서접수를 마친 너.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기도 할 거야. 그렇지?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는 말자. 넌 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으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숨 가쁘게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기억나? 초등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던 너는 영재원에 선발돼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행복하지 않았잖아. 스스로 원해서 공부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운명이었을까? 우연히 펼쳐본 중3 때 일기장. 축구를 좋아하는 너는 그때도 종종 일기장에 축구경기 관람평을 쓰곤 했잖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을 두고 나름의 의견을 밝힐 때도 있었고. 그때 네 글 솜씨를 인정해 주셨던 담임선생님이 일기장 한구석에 써주신 말들을 차근차근 읽어보다 번뜩 뇌리를 스친 생각! ‘그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아.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축구와 글쓰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축구전문기자가 되는 건 어떨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운명이란 정말 있는 것 같아. 목표가 생긴 후 너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프로축구구단 서포터스 활동을 하면서 부산의 축구경기 소식을 전하는 네 기사에 댓글이 달렸을 때, 얼마나 즐거웠는지 기억나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구체적인 진로와 학과까지 결정했을 땐 진정한 행복을 느꼈잖아. 아, 눈물난다! 암울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큼 잘 성장해왔다고, 참 대견하다고 오늘은 너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고 싶다.
그렇지만 마음 놓으면 안돼. 이게 끝이 아니잖아. 누군가가 그러더라. 수능을 마치고 대입을 무사히 통과하면 12년 공부는 이제 끝이라고.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 넌 마침표를 찍기 위해 달려온 게 아니야. 93일 후면 잠시 한숨 놓겠지만, 그건 더 큰 너를 만나기 위해 찍는 쉼표일 뿐이지 않을까?
이젠 목표지점인 골문을 향해 달려가는 일만 남았어. 힘차게 축구공을 차 골인시키는 거야. 그리고 대학에서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만나자. 그때는 꼭 영국에서 편지할게. 약속할게, 파이팅!
장재원 기자 j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