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한류 붐에 비판적인 시민 수백 명이 7일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후지TV 근처에서 ‘반한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야후저팬 홈페이지
7일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민영방송 후지TV 앞에서 ‘반(反)한류’ 시위가 열렸다. 처음 600여 명이었던 참가 인원은 시위가 진행되면서 2000여 명으로 불어났다고 일본 인터넷 매체들이 전했다. 참가자들은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고 일장기를 흔들기도 했다. ‘천황 만세’ 구호도 나왔다. 전형적인 우익 시위 행태다. 시위 장면은 몇몇 일본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생중계됐다. 시위 참가자들은 “한류 그만두라” “방송 면허를 취소하라”는 구호를 외쳤고 “한국의 손에서 후지TV를 되찾기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한류 비판꾼들의 인터넷 주무대인 ‘2채널’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기획됐으며 이들은 21일에도 시위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정제되지 않은 인터넷 여론을 유통시키는 일부 사이트가 주도했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해 일본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이날 시위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류 반대 기류가 형성되는 것은 설 땅이 좁아진 일부 연예인들의 위기감에 한국을 비판하는 우익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한류 시위가 후지TV 앞에서 열린 것은 이 방송국이 한류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방송하고 있다는 우익의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배우 다카오카 소스케(高岡蒼甫·29)였다. 그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채널8(후지TV)은 이제 정말 보지 않겠다. 한국 TV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일본인은 일본의 전통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다”고 말해 인터넷 공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다카오카는 2005년 상영됐던 영화 ‘박치기’에 재일교포 고교생으로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박치기’는 재일교포의 애환을 그린 영화로 일본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후 그는 일본 내에서 ‘반일’ 배우로 인식되는 등 심적 고통을 겪으면서 ‘미디어 불신’을 키웠다고 한 스포츠신문이 전했다.
다카오카가 후지TV를 비판한 직후 소속사를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익의 한류 반발은 확산됐다. 나카타 히로시(中田宏) 전 요코하마 시장이 트위터에서 “(다카오카의 발언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방송국이냐”며 후지TV를 비판했다. 그는 재임시절 요코하마 공립학교에 역사왜곡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한 장본인이다.
이에 대해 뇌 과학자로 TV에 자주 등장하는 모기 겐이치로(茂木健一郞) 씨는 최근 트위터에 “한류의 어디가 나쁜가. 글로벌 시대에 유치한 자국 문화주의는 일본을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라며 “일본이 이대로 가다간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영방송 TBS의 한 프로그램에 따르면 후지TV는 최근 1개월간 ‘제빵왕 김탁구’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 한국 드라마를 40시간 방영했다. TBS(20시간), TV도쿄(12시간), NHK(4시간)보다 많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후지TV는 극우 성향인 산케이신문의 대주주이고 대표적 역사왜곡 교과서를 출판하는 후소샤(扶桑社)를 소유하고 있다. 일본의 민영방송 가운데 규모와 시청률에서 1위로 철저하게 시청률 위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 부문에 특히 강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대중문화시장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며 “한국 드라마가 재미없어지지 않는 한 일본 내 한류는 건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