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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기자의 ‘어제 현장’] ‘한강다리’에 사람이 모이지는 않았다, 대신…

입력 | 2011-08-10 10:00:03

●주가폭락시대의 자화상…공포가 공포를 낳는다.
●많이 성숙한 투자환경, 여전히 주식은 직장인의 유일한 상승기회




9일 한강 한남대교 자살소동자 사건을 처리한 용산이태원 지구대 모습.

어제(9일) 오전 11시42분 한 경제신문 인터넷판에는 다음과 같은 자살미수 기사가 등장했다.

"서울 강남소방서는 9일 한남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던 이모 씨(30)를 구조했다…이씨는 이날 오전 3시3분부터 25분여간 강남구 압구정동 한남대교 전망대 난간 바깥쪽에 서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었으나…용산 경찰서 이태원지구대로 인계됐다"(머니투데이)

이 뉴스가 전해진 순간 주식커뮤니티의 반응은 폭발했다. 오전에 잠시 주춤하던 코스피(KOSPI) 지수가 1720을 거쳐 1700선까지 위협했기 때문이다. 전날과 비교해선 150포인트 이상 폭락해 있었고 지난주와 비교해서는 무려 400포인트(20%) 가까이 벌어졌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한강에서 만나자'라는 블랙유머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이 뉴스에 주식 투자자들이 "드디어 (자살)시작인가?"라는 반응을 쏟아낸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분명 주가폭락으로 인한 후폭풍일 것이라는 추론이 팽배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는 경험담도 적지 않았다. 일명 '한강정모'에 대한 자조 섞인 대화들이 바로 그것이다.

■ 주식폭락…"한강에서 모이자고?"

궁금증이 폭발한 기자는 곧장 차를 이태원지구대로 돌렸다.

오후 2시. 이태원은 평소와 같이 적정 수준의 외국인들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태원 지구대 문을 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늘 새벽 자살시도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요?

"아, 한남대교 7번째 교각 바깥쪽에서 일어난 사건이요? 그거 뭐더라…애인이 변심해 떠나갔다고 비관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서강대교 인근에 자리한 119영등포소방서 수난구조대 모습. 다행히 이날은 자살자가 나오지 않았다. 한강 자살자는 매년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구조대를 급파하는 것 이외에 뚜렷한 대책은 없는 편이다.

-혹시, 주식투자 실패에 대한 얘기는 없었나요?

"네. 여자친구에 대한 내용이었지 절대로 그 밖의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한남대교에서는 실제 자살이 그리 많지 않아요…"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두의 예상과 다른 답변을 듣고 돌아가는 기자의 뒤통수를 향해 이태원지구대 김 모 경장은 "돈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너무 (인생이) 아깝잖아요…"라고 매조지 한다.

돈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다. 특히 자본시장이란 전쟁터에서 패자들의 말로는 언제나 비참했다. 여의도 증권맨들과 채권맨들이 사용하는 채팅창에는 폭락장이 펼쳐지면 언제나 "OO지점 누가 자살했데…"라는 긴급쪽지가 나돌곤 했다. 패장의 전사(戰死)소식이 인터넷 메신저 창으로 순식간에 전해지는 시대라니….

내친김에 여의도 서강대교 부근에 위치한 영등포소방서 수난구조대로 차를 돌렸다. 한강에 투신자가 발생할 경우 119구조대가 출동하는 바로 그곳이다. 최근에는 최고의 권력기관인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사건도 있었다.

한강에서의 자살 시도는 매년 400여건에 달할 정도다. 2008년 이후 한강투신자만 해도 400명을 훌쩍 넘는다. 특이하게도 자살 시도는 마포·한강·원효대교 순으로 서울의 서쪽, 그것도 여의도 쪽에 근접해 있다. 다행히도 9일에는 투신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수난구조대에는 언제 누가 투신할지 모른다는 느낌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 여의도는 담배피우는 증권맨들로 거리가 가득…

지난주 목요일 시작된 주가 하락은 처음에는 스쳐지나가는 미풍인 줄로만 예측했다. 그 누구도 주가가 하락할지 모른다는 경고를 건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대기업들의 매출과 수익률은 세계 평균을 상회하고 있었고 1997년(단기외채급등) 2008년(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도 없었다. 결국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금요일(8월5일) 하락시점에 이른바 '물타기'나 '저가매수'에 나섰다.

모든 것은 급작스럽게 찾아와 모두를 공포에 빠뜨렸다. 그 절정은 지난 일요일(7일) 아침에 전해진 신용평가기관 S&P에 의한 미국국가신용등급 하락 사건이었다. 미국 절대우위의 '브래튼우즈' 체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모든 것이 낯설고 충격적인 현실이다.

오후 3시 여의도는 의외로 차분했고 증권거래소 뒤편에 모인 화이트칼라의 증권맨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며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이날 주가는 급등락을 거듭하더니 1801이라는 준수(?)한 선에서 마무리 됐다. 막판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나선 탓에 순식간에 80포인트 정도 만회한 것이다. 곧장 여의도 증권거래소 뒤편에 위치한 한 자문형랩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증권맨과 고모씨(37)와 머리를 맞댔다.

9일 여의도 증권거래소 뒤편에서 삼삼오오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중인 증권맨들(왼쪽). 여의도 증권거래소 전경. 예고없는 주가 급등락 속에 투자자들의 모습은 의외로 담담했다. 21세기 금융시장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화-정이 박살이 났네요. 공포가 공포를 낳는다더니…"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이란 최근 1년간 한국증시를 이끌어 온 주도주를 지칭하는 이쪽 업계의 약어다. 일요일부터 출근을 강행한 그는 최근 3일 사이에 100개가 넘는 증시보고서를 읽었다고 한숨과 함께 피곤함을 호소한다.

"어제는 개인이 털더니 오늘은 외국인이 털어내니 견딜 재간이 없다. 그나마 오후 들어 국민연금의 구두개입이 조금 효과를 본 것 같기도 한데…오늘 밤에 미국 연준(Fed) 발표를 기다봐야 겠다. 중국과 독일의 대응도 관심이 가고…."

-혼란의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나?

"이제는 모두가 아는 얘기가 됐다. 다만 상당수가 미국의 신용등급 얘기를 하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유럽'과 '유로화' 미래 문제다. 이전에는 개인의 탐욕이 문제를 키웠다면 이제는 선진국 정부들의 무책임함이 상처를 키운 모양새다. '독일'이 의지가 없다면 유로화는 끝장이다. 게다가 일본이나 미국도 별 힘을 못 쓰는 상황이 됐다. 결정적으로 2008년과 달리 중국도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물가물안인 중국도 긴축정책 하려고 제 코가 석자이다보니…."

전 세계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됐다는 사실은 여의도 증권맨의 간략한 설명만으로 실감이 됐다. 그는 직업 특성상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 상품에 투자하고 있었다. 금요일부터 계속 물타기를 했고 오늘도 10600원에 조금 더 샀기 때문에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손실은 상당히 만회한 상태다.

"'미수(신용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것)'를 친 개인들이 문제다. 솔직히 말해서 30대 직장인들에게 주식이 거의 유일한 희망 아니었나? 금리는 낮고 부동산도 미래가 안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하락은 충격이 적잖이 커 보인다."

곧장 자리를 옮겨 이번엔 외국계 증권사에서 10째 근무하는 또 다른 증권맨 허모 씨(40)를 만났다. 그 역시 유로화의 미래에 있어 독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발견한 사실은 우리들의 담론은 급격하게 국제화가 됐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은 독일 정부와 미국 정부의 결정하나하나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환경이 됐다.

"커다란 비극이죠. 당분간 급등락을 거듭할지 몰라요. 몇몇 우량기업을 빼곤 정부고 개인이고 이제는 다 망가지고 있다는 얘기에요. 설마 독일이 유로화를 포기하진 않겠죠? 유료화를 깰 수는 없을 테니까요. 역설적으로 망가졌다는 미국 달러화가 다시 주목받겠죠. 유로화나 엔화에 투자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제 국제금융시장과 우리의 일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동아일보DB


■ 바빠진 애널리스트, 신난 채권전문가, 화가 난 기자…

한 유명 애널리스트는 바쁘다는 이유로 끝내 통화가 불발됐다. 한 채권전문가는 "채권 시장은 상대적으로 미래가 밝아서 좋다"고 답한다. 금융권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번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영향을 끼친 데이비드 비어스(58)를 지난해 만났다"고 답하며 그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무척 건방진 사람이었다. 지난해 7월 S&P 실사단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한 연례 협의를 위해 방한했다. 한국인들의 영어를 비웃었고 심지어 '북한 정권이 교체되면 한반도에 전쟁 나는 것 아니냐'며 한국의 신용상태를 조롱했을 정도였다."

국내 일각에선 '개혁적 오바마를 무너뜨리기 위한 금융자본의 반격'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수많은 걱정과 우려가 오간 하루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어제 증권사 채팅창에 그 누구도 자살했다는 뉴스는 뜨지 않았다. 국내 투자환경이 성숙한 징표로 받아들여도 될까? 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60대 어르신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삼성전자 공모할 때부터 주식투자해온 사람이에요. 코스피 500을 경험하기도 했고 2008년을 포함해 수많은 폭락장을 경험했는걸요. 투자의 정도를 지킨다면 이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아요. 내일은 오르지 않을까요?"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