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과 쌍벽 이루는 ‘어머니표’ 여름철 별미
콩국수가 언제부터 서민들의 여름철 별미가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에 처음으로 콩국수가 등장한 것은 불과 100년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19세기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보이기 때문이다. 콩을 물에 불린 후 살짝 데치고 갈아서 소금으로 간을 한 후에 밀국수를 말아 깻국처럼 고명을 얹어 먹는다고 나온다. 지금의 콩국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시의전서에 콩국수 만드는 법이 처음 기록됐다고 우리 조상들이 이전에는 콩국수를 먹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콩국수의 주재료인 콩국은 먼 옛날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콩국에 밀이나 메밀로 뽑은 국수를 말아먹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조 때의 인물인 다산 정약용도 춘궁기가 되면 뒤주가 비어 있는 때가 잦아져서 콩국 마시는 걸로 만족하며 지낸다는 기록을 남겼다. 또 구한말의 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도 밀과 보리는 이미 흉년이 들었고 햇곡식이 나오려면 앞으로도 까마득하게 남았는데 부엌의 콩국은 떨어지지 않고 있는지 염려된다며 유배지에서 고향의 살림을 걱정하는 편지를 썼다.
콩국수의 주재료인 콩국은 이렇게 청빈한 선비들이 절개를 지키며 먹는 음식이었고 살림이 넉넉지 않은 서민과 농민들의 양식이었다.
사실 지금은 콩 값이 비싸져서 싸구려 음식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옛날에는 감옥에서 콩밥을 먹였을 정도로 흔해 빠진 곡식이었다. 그러니 가난한 살림에서 콩을 갈아 만든 콩국은 부족한 양식을 보충하는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름이 되면 농촌에서는 갓 거둔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든 후 국수를 뽑아 콩국에 말았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모자란 양식 대신 마시던 콩국에다 새로 추수한 밀로 만든 국수를 말아 여름철 서민들의 최고 별미로 승화시킨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