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 총선에서 집권 민자당이 패배한 뒤 노 대통령과 청와대 단독 주례 회동을 마친 YS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다음 날 YS는 측근들에게 “어제 봉투를 확 집어던지려다 말았다”고 털어놨다. 봉투에 대선후보 조기 경선 논리를 뒷받침하는 여론조사 자료 등이 있었는데 노 대통령이 이를 무시해 버렸던 것. 끝내 노 전 대통령이 YS의 조기 경선 요구를 받아들이자 대통령 주변 세력은 YS 진영으로 속속 투항했다. 노 전 대통령이 친인척 K 씨와 나눈 얘기가 30분도 안 돼 YS 쪽에 전달됐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외로운 섬에 갇힌 처지”라고 토로했다.
▷14대 대선 직후 군 출신인 안기부 고위인사는 정권인수위원회를 맡은 YS 측근 K 씨를 만나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이 인사는 “좀 많이 담았다. 인수위 활동 경비에 써라”라고 말했으나 K 씨는 “당장 가지고 가라”고 호통을 쳤다. YS 진영은 1992년 대선 승리를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로 보는 분위기였다. 민주화세력이 군부 쿠데타세력을 몰아냈다는 식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YS 측의 막후 채널도 거의 끊길 정도로 분위기는 냉랭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