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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연욱]노태우와 YS의 악연

입력 | 2011-08-11 20:00:00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가 1996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1992년 14대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이 김영삼(YS) 민자당 후보에게 “쓸 만큼 줬다”고 한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YS 청와대가 은밀히 노 전 대통령 측에 연락을 취해 “무슨 의도냐. 한번 해보자는 거냐”는 격한 반응을 보이자 노 전 대통령 측 P 씨는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며 사태를 수습했다. 재헌 씨는 “수감 중인 아버지는 축재(蓄財) 차원에서 비자금을 마련한 파렴치범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YS에 대한 원망과 악감이 배어 있는 말이었다.

▷1992년 3월 총선에서 집권 민자당이 패배한 뒤 노 대통령과 청와대 단독 주례 회동을 마친 YS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다음 날 YS는 측근들에게 “어제 봉투를 확 집어던지려다 말았다”고 털어놨다. 봉투에 대선후보 조기 경선 논리를 뒷받침하는 여론조사 자료 등이 있었는데 노 대통령이 이를 무시해 버렸던 것. 끝내 노 전 대통령이 YS의 조기 경선 요구를 받아들이자 대통령 주변 세력은 YS 진영으로 속속 투항했다. 노 전 대통령이 친인척 K 씨와 나눈 얘기가 30분도 안 돼 YS 쪽에 전달됐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외로운 섬에 갇힌 처지”라고 토로했다.

▷14대 대선 직후 군 출신인 안기부 고위인사는 정권인수위원회를 맡은 YS 측근 K 씨를 만나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이 인사는 “좀 많이 담았다. 인수위 활동 경비에 써라”라고 말했으나 K 씨는 “당장 가지고 가라”고 호통을 쳤다. YS 진영은 1992년 대선 승리를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로 보는 분위기였다. 민주화세력이 군부 쿠데타세력을 몰아냈다는 식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YS 측의 막후 채널도 거의 끊길 정도로 분위기는 냉랭했다.

▷YS는 지금도 사석에서 “쿠데타 한 ×들”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대선자금 3000억 원 지원’을 폭로하자 YS 측은 “모든 돈은 당으로 전달됐고 개인적으로 만진 돈은 없다”고 반박하면서 회고록을 낸 의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각에선 회고록 출간이 노 전 대통령 가족의 정치적 재기를 노린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