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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민수]신약 개발에 필요한 임상시험 참여를

입력 | 2011-08-12 03:00:00


박민수 국가임상시험사업단 부단장 연세대 의대 교수

손바닥만 한 아기가 태어났다. 투명하고 얇은 피부 밑으로 실핏줄이 보이고 손가락은 성냥개비보다 작고 가늘다. 숨쉬기도 힘들다. 작은 가슴은 가냘프게 들썩거리며 살기 위해 숨을 들이마신다. 아주 얇은 빨대 두께의 튜브를 통해 인공호흡기가 숨을 불어 넣는다. 폐계면활성제를 아기의 기도를 통해 주입한다. 얼마 안 돼 아기의 허파꽈리가 열리고 편안히 숨을 쉰다.

1980년 일본 데쓰로 후지와라 교수가 세계 최초로 폐계면활성제를 미숙아 10명에게 투여한 임상시험 결과가 ‘랜싯’지에 보고된 이래 수많은 미숙아가 이로 인해 생명의 빛을 보았다. 신생아호흡곤란증이라는 치명적인 미숙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9년 커트 본 니어가트 박사가 이 질환의 원인을 처음으로 밝혀낸 뒤 수십 년에 걸친 수많은 연구자의 노력으로 치료제인 폐계면활성제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약 개발’이란 단어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생소했다. 외국의 이야기였다. 일반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거의 1조 원에 이르고 최소 20년 이상 걸리는 멀고도 험난한 과정이다. 투자비가 엄청나게 많은 데 비해 성공 확률은 낮고, 너무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학적 윤리적 감시체계를 거쳐 어렵사리 신약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투자비를 회수하기란 쉽지 않다. 일명 ‘블록버스터 신약’은 그리 쉽게 개발되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수백만 또는 수천만 가지 화합물을 만들어 그중 한 가지는 걸리겠지 하는 식의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 수십 년에 걸쳐 암 정복의 꿈을 키워 왔고 대중매체를 통해 당장이라도 암이 정복될 것이란 희망을 갖게 만든 수많은 연구 보고가 있었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렇지만 신약 개발이란 말은 환자들에게, 그리고 의료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단어다. 그리고 ‘누군가는 하겠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합심해서 이루어야 할 목표이다. 소중한 생명을 위하여, 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우리나라는 신약 개발 제약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산업으로 지정하고 이에 필요한 인프라와 체계를 갖추는 데 힘을 쏟고 있다. 1999년 국내 최초로 국산 항암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승인을 받고 제1호 국산 신약으로 등재된 이후 지금까지 15개의 신약이 탄생했다. 세계에서 11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획득한 신약도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치는 아직 미미하다. 환자의 필요에 맞춰 우수하고 안전한 신약을 개발하면 인류 건강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득도 2차적으로 따라온다.

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분야의 기초의학 발전에 투자해 왔다. 결코 헛되이 쓰인 돈은 아닐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의학 및 과학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에 접근했고, 여기저기 널려 있는 구슬을 꿰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신약 개발에서 정부와 산학연의 노력 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국민의 지지와 동참이다. 실제 환자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해야 하는 임상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정으로 신약 개발의 성패를 좌우한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 중대한 과정을 성공리에 마치려면 국민이 적극적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해야 한다. 국민이 신약 개발의 수혜자인 동시에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인력 양성이다. 신약 개발에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직종과 분야가 어우러져 있고 수많은 단계를 거치며 매 순간 신약 개발의 성패를 좌우할 만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부족하고 취약한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이들을 적극 양성하는 것은 신약 개발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며 성공적인 신약 개발 국가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박민수 국가임상시험사업단 부단장 연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