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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에 ‘스마트 유전자’ 넣으면 사람처럼 똑똑해질까

입력 | 2011-08-12 03:00:00


1968년 영화 ‘혹성탈출’은 유인원이 인간을 지배하는 지구의 미래 모습을 완벽한 특수 분장으로 생생하게 보여준 SF의 명작이다. 17일 개봉되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인간이 어쩌다가 유인원의 지배를 받게 됐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에서 유전자 치료를 이용한 치매약을 개발하는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은 침팬지에게 임상시험을 한 결과 침팬지가 사람만큼이나 빨리 퍼즐을 푼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러나 한 침팬지가 투자설명회 자리에 나타나 난동을 부려 개발이 중단되자 침팬지들을 안락사시킨다. 이때 새끼 침팬지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데려와 키우는데 훗날 유인원의 리더가 되는 ‘시저’다.

수년 뒤 윌은 더 강력한 치료제를 개발했고 시저는 이 약을 훔쳐 다른 유인원들과 흡입한다. 그 결과 유인원들은 말까지 할 수 있게 되고 우리를 탈출해 경찰의 방어선을 뚫고 숲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설정처럼 침팬지에게 ‘스마트 유전자’를 넣어주면 침팬지가 정말 사람처럼 똑똑해질 수 있을까.

○ 언어, 뇌 크기, 손가락 관련 유전자 서열 달라

쥐에 사람의 언어유전자 ‘FOXP2’를 넣어주면 찍찍거리는 소리가 바뀌고 뇌세포에 변화가 생긴다. 쥐의 FOXP2 유전자가 있는 정상 쥐의 뉴런(위)에 비해 사람의 FOXP2 유전자가 있는 쥐의 뉴런(아래)의 신경돌기(실처럼 보이는 부분)가 더 길다. 셀 제공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은 98.8%가 동일하다. 그럼에도 사람과 침팬지는 겉모습은 물론이고 지적 능력도 상당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말을 할 줄 알고 뇌의 용적도 침팬지의 3배가 넘는다. 또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직립하기 쉽게 발가락은 짧다. 그렇다면 사람에게서 이런 변화를 일으킨 유전자를 찾아 침팬지에게 넣어주면 되지 않을까.

침팬지가 말을 하게 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로는 ‘언어유전자’로 불리는 ‘FOXP2’가 있다. 이 유전자가 고장 난 사람은 언어장애가 있다. FOXP2는 사람뿐 아니라 포유류와 조류에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과 침팬지의 FOXP2와 염기서열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 유전자의 변이가 사람이 언어능력을 획득한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뇌의 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ASPM’이다. 이 유전자가 망가진 사람은 소두증에 걸리며 뇌 크기가 70%나 줄어든다. 흥미롭게도 ASPM 유전자 역시 사람과 침팬지의 염기서열이 다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뇌가 급팽창하는 데 ASPM 유전자의 변이가 관여됨을 시사한다.

사람의 손가락 발가락의 형성 과정에는 ‘HACNS1’이라고 불리는 게놈의 한 부분이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HACNS1은 유전자는 아니지만 다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부분이다. HACNS1은 546개의 염기로 이뤄져 있는데 침팬지와 사람은 16곳이 다르다.

○ 유전자 바꾼다고 사람처럼 되지는 않아

그렇다면 사람의 이런 유전자나 조절 부위를 침팬지에게 넣어주면 침팬지가 말도 하고 뇌도 커지고 손가락도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아직까지 침팬지에게 이런 실험을 해봤다는 보고는 없다. 다만 2009년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볼프강 에나드 박사팀은 사람의 FOXP2 유전자를 쥐에게 넣었는데 그 결과 쥐의 ‘찍찍’거리는 소리가 바뀌었고 뇌 신경세포의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과학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 차이를 분석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캐서린 폴라드 교수는 “지성은 굉장히 복잡한 특성으로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나오는 슈퍼 스마트 유인원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유전자 몇 개를 사람 것으로 바꿨다고 침팬지가 사람처럼 똑똑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