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오 시장은 사퇴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과 측근들 사이에는 ‘주민투표에 패할 경우 식물시장이 돼 더는 시정을 운영하기 어렵다.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미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한 만큼 시장직 사퇴 외에는 마땅한 카드가 없는 실정이다. 대선 불출마는 그가 언급한 정치적 책임과 직접 연결시키기는 데 한계가 있다.
오 시장이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 주민투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2단계 충격파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대선 불출마 카드로 이목을 집중시킨 뒤 개표가 가능한 투표율(33.3%)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17일 전후에 사퇴 선언으로 다시 한 번 이슈를 만드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불출마 선언 자체가 ‘정치적 다걸기(올인)가 아니라 반(半)걸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 시장 스스로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사퇴 선언을 하더라도 막판에 해야 한다”며 “시장직을 걸겠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관심을 더 갖게 돼 투표율이 5%포인트 이상 올라가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개표가 이뤄지려면 서울시 유권자 836만 명의 33.3%인 278만6000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오 시장은 이날 시장직 사퇴에 대해 “결심이 서면 당을 설득하겠다”고 말해 강행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오 시장의 이날 기자회견 내용을 놓고 ‘주민투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사퇴 카드를 쓸 수 있으니 확실하게 지원해 달라’는 압박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 시장의 대선 불출마 카드가 ‘정치적 묘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박근혜 대세론이 불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인 그가 시장직을 던지고 경선에 나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주민투표 흥행을 위해 불출마 카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해석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후보 경선 라이벌로 부상하는 것을 경계했던 친박계를 안심시키면서 여권 전체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 지지층은 주민투표 참여 의지가 강한 반면 박 전 대표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높지 않았다.
대선 불출마가 여러 가지 정치적 해석을 낳자 여권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대선 불출마와 시장직 사퇴 카드를 분리해 쓰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 시장은 진정성을 강조하지만 정치적 노림수로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초선의원은 “대선 불출마가 정치권의 관심사일지 몰라도 주민투표를 앞둔 서울시민의 관심사는 아니지 않으냐”며 “정치적 이벤트 성격이 짙어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이날 선언을 놓고 “‘오 시장의’ ‘오 시장에 의한’ ‘오 시장을 위한’ 투표”라고 비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