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월 완공 ‘반기문기념관’, 반 총장 기뻐할까?● 충주는 외교관의 고향, 음성은 집안의 뿌리
충북 음성 읍내 곳곳에 반기문 UN사무총장의 고향방문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기자가 밤 10시, 충북선을 타고 도착한 음성역에는 위와 같은 내용의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었다. 이 같은 사정은 인구 10만이 채 안되는 음성군 읍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100여개의 플래카드가 8월14일 일요일 4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환영을 위해 내걸려 있었다. 그는 지역사회의 ‘자존심’이자 새로운 ‘명물’인 셈이다.
반 총장의 출생지는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동1리 행치마을, 이제는 간단히 ‘반기문 마을’로 통용된다. 이 마을은 음성군 시내에서 고작 10여km 떨어져 있다. 그러나 대중 교통편이 불편해 차가 없다면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다. 택시비는 약 8000원 정도다.
음성군청은 지난해 이 곳에 ‘반기문 기념관’과 ‘평화랜드’라는 기념공원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생가까지 복원하여 마을 전체를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실제 이 곳은 ‘광주 반씨’ 집성촌일 뿐만 아니라 인근에 선영 무덤이 집중돼 있어 반 총장의 고국 방문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아니 오히려 고국 방문의 주된 목적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곳 음성군 상동1리가 반 총장의 진짜 고향일까?
충주 출신 인사들의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반 총장은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충주로 이사해 19살까지 충주에서 정규교육기관을 마쳤기 때문이다. 부인인 유순택 여서가 충주출신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어머니 신현순(90) 여사와 형제들이 충주에 살고 있다. 충주고를 졸업한 충북환경운동연대 박일선 대표(47)는 그의 관운을 ‘충주 출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반 총장은 사실상 충주사람이에요. 비단 충주에서 학교를 나왔기 때문만이 아니라 ‘충주사람’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외교관으로 성공했다고 봐요. 역사적으로 충주사람이 외교에 능했어요. 통일신라시대 ‘강수’라는 인물과 최근엔 홍순영 장관도 충주사람이죠. 고구려-백제-신라의 땅이었기 때문에 쉽게 호불호와 자기주장을 드러내지 않아요. 중립에 능하죠. 반 총장 역시 ‘그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 처신’ 때문에 장관도 하고 UN사무총장도 재선까지 했다고 봐요.”
어린 시절 그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에서 촬영된 사진. 초가지붕이 아닌 슬레이트 지붕이다.
■ 생존한 인물의 기념관과 동상까지? 괜찮다…
“반기문 생가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 총장의 재선을 축하합니다.”
음성-청주간 국도를 따라가 보면 오른편에 ‘반기문 마을’을 알리는 표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12일은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반 총장을 에스코트하기 위한 경찰의 훈련까지 잦아서 더 쉽게 마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은 일요일에 벌어질 반 총장의 두 번째(임기 내)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공무원들과 작업자들로 정신없이 분주했다. 꽃단장과 물청소는 기본이고 방역작업과 보도블록작업까지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마을 정중앙에는 지난해 복원된 반 총장의 생가가 서 있고 그 왼편으로는 올해 초에 완공된 ‘반기문 기념관’과 오른편에는 ‘평화랜드’라는 공원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이 날도 적지 않은 이들이 반 총장의 생가를 둘러보고 기념관을 찾았다.
실제 반 총장은 대한민국의 조금 특별한 ‘성공모델’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른바 ‘(인문계) 수재형 성공 모델’의 전형이라는 얘기다. 공부를 통해 서울대와 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됐고 이후 장관과 국제기구 수장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로 각인됐다.
그 때문인지 방명록에는 “반 총장님처럼 공부 잘하고 싶다”는 글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반기문기념관’ 내에 설치된 ‘밀랍인형’ 모습.
작지만 알찬 기념관은 그의 인생을 쉽게 조망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그의 명연과 생활의 신조를 영상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어릴 적 학창시절과 그의 태몽까지도 ‘위인전 스토리’로 꾸며놓았다. 어색해 보이는 ‘밀랍인형’은 이 곳의 성격을 정확하게 암시하고 있었다.
5분짜리 홍보영상은 ‘행치마을’이 얼마나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위대한 장수가 나올 것이다’라는 전설이 내려왔다…보덕산 아래 완벽한 배산임수,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 ‘진응수’…세계의 대통령을 배출하기에 한 치의 모자람도 없는 완벽한 명당…”
마을 뒤편에 자리한 ‘반기문 평화랜드’ 공원과 동상. UN사무총장 연임을 고려치 못하고 생존한 인물의 동상을 설치했다는 지적도 흘러나왔다.
생존해 있는, 그것도 현직 인물의 기념관이란 사실 전례가 없는 모험이다.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그 점이 논란이 됐다고 한다. 심지어 반 총장은 이 같은 개인기념관이 들어선다는 사실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만일 알았다면 불같이 화를 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 음성군민은 이렇게 옹호 논리를 펼쳤다.
“반 총장이 재선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으니까 올해 초에 개관을 한거고, 그리고 살아있다고 해도 주로 외국에 살고 있는 분이니까 크게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이까요.”
만일 반 총장이 ‘정치적인 인물’이나 ‘세속적 야심’을 가졌더라면 이 기념관은 분명 논란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가마을의 복원과 살아있는 분의 동상까지 공원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비정치적인 특성은 이번 생가마을 공원화 과정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여기서는 반씨가 바로 김씨여…나는 12촌”
“이 동네는 반씨가 바로 김씨에요. 저도 반씨고 촌수로 따지면 반 총장과 12촌 관계에요.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이고 찾아오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죠.”
마을에서 농사일을 하는 반기웅(37)씨는 가장 젊고 활동적인 주민 중 하나다. 그 역시도 이번 방문에 반가움을 표시했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마무리하던 2006년에 한 번, 그리고 UN사무총장에 당선되고 다시 한 번 이번이 세 번째다.
옆에 계신 한 어르신은 “예전 장관 때만해도 같이 막걸리 마셨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6촌 형님이란다. 이 곳 20여 가구는 한두 집만 빼고 모조리 광주반씨 장절공파 집성촌이다. 거대한 석조 족보까지 마을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500년 전부터 살아왔다고 하니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반 총장이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일지 모른다. 마을 주민들께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총장 생가가 너무 도식적인 농촌마을 모습인데 실제 저랬나?
“2002년 철거된 집을 지난해 복원시켰다. 원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복원하려고 했는데, 공사 와중에1970년대 이전 초가삼간 흙벽집 사진이 발견됐다. 그러다보니 저런 모습으로 지어졌는데 사실과 다른 부분은 별로 없다.”
- 충주 사람들은 반 총장의 고향이 충주라고 하는데…
“에이 먼 소리여. 여기서 태어나고 선영이 다 있으니까 여기가 고향이지. 이 동네가 바로 광주 반씨 집성촌이야. 충주는 잠시 공부하러 나간거지”
- 마을 규모나 모습에 비해 ‘현대적 공원’ 모습이 조금은 어색한데…
“글쎄, 그렇기도 한데. 시간이 조금 흐르면 많이 자연스러워 질것이다…”
“세계를 품으신 태산이시여…” 고향마을에 세워진 ‘반기문 취임축하시비’
사실 대한민국이 빠르게 국제화 하고 세계화했다고 해도 “우리나라 출신 UN사무총장”이란 아주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두세 번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이후에야 세계적 인물이 나올 것이란 예측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1944년생인 반 총장은 벼락과도 같이 2007년 그는 일국의 장관에서 국제기구 수장이라는 도약을 이뤄낸 것이다. 게다가 재선을 통해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마땅히 대한민국의 자랑이며 고향의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할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동양적 관점에서 그의 배경에 자리한 강고한 문화적 혈연적인 근원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지 모른다. 그리고 그 자부심을 표출하기 위해 이 정도의 조경과 기념관 사업을 벌인 것은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고향 후배들의 조그만 정성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보덕정(普德亭)’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보덕산의 이름에서 따온 오래된 마을 사랑방이라고 한다. ‘보덕’이란 크나큰 덕, 혹은 덕이 널리 퍼진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반 총장의 인품과 현재의 직위를 어찌보면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는 표현이기도 했다.
반 총장 본인이 들으면 조금 민망할 만한 시비가 생가 옆으로 세워져 있었다.
“세계를 품으시는 태산이시여…”라는 제목으로 “청풍명월 복된 땅 보덕산 자락에서 태어나…일백아흔두나라 사랑으로 품으시는 태산이 되었다”고 칭송하고 있다.
본인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고향마을 주민이나 씨족입장에서는 가장 솔직한 표현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큰 인물은 오히려 고향에서 괄시 당한다는 말이 통용되는 게 우리 동양사회다. 그러나 이토록 환영받고 칭송 받는다 점에서, 반 총장이 얼마나 복 받은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일이 아닐까?
충북 충주, 음성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