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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박찬호와 트레비스가 벌컥 화를 냈던 이유는?

입력 | 2011-08-14 10:24:00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아시아 선수 메이저리그 최다승(124승) 기록 보유자인 '코리안 특급' 박찬호(38·오릭스).

1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한 박찬호지만 처음에는 미국 생활에 적응이 안 된 탓에 어이없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박찬호의 선수 탈의실 난동 사건'도 그중의 하나.

1996년 LA 다저스의 신인 투수였던 박찬호는 그해 6월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승리투수가 됐다.

그런데 기분 좋게 탈의실에 들어선 박찬호는 갈아입으려던 양복이 가위로 산산조각 잘려나간 것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양복이야말로 박찬호가 애지중지하던 것. 박찬호는 2년 전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한 뒤 꽤 큰돈을 들여 이 양복을 구입했고, 자신이 첫 승리를 거뒀던 시카고를 방문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잘 모셔두었던 이 양복을 가져왔던 것이다.

박찬호는 소리를 지르며 불 같이 화를 냈는데, 처음에는 싱글거리며 바라보던 동료 선수들도 표정이 굳어지며 탈의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쏴~"해졌다.

다저스 선수들이 박찬호의 양복을 자른 이유는 이런 행위가 잘나가는 루키들을 놀리는 '다저스의 전통'이었기 때문.

마이크 피아자를 비롯해 동료 선수들과 타미 라소다 감독까지 나서 "우리가 준비한 디스코 의상을 입고 화를 풀라"며 달랬으나, 분이 안 풀린 박찬호는 유니폼 바지에 점퍼 차림으로 운동장을 나섰다.

특례보충역 훈련을 받을 때 박찬호의 모습. 동아일보DB

다저스의 고참 선수들은 박찬호를 비난하고 나섰다. 피아자는 "지난해 노모 히데오도 겪었고 나도 당했던 일"이라며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박찬호는 "루키에게 장난을 거는 전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옷을 감춘 예는 있어도 아예 찢어버린 적은 없었다"며 "'순수한 장난'이었다면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터 오말리 구단주도 중재에 나서 에이전트인 스티브 김씨를 통해 "선수들의 장난은 하나의 전통이니 찬호를 이해시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했고,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어쨌든 박찬호가 이런 황당한 일을 겪은 이유는 한국과 미국의 풍습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국 스포츠 무대에서 뛰는 외국 선수들도 이런 문화와 풍습 차이를 잘 극복해야 제 활약을 해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거꾸로 외국 선수들을 영입한 구단에서는 이들의 문화적 차이를 잘 감안해서 대우해야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나지 마라시(27)를 지난달 돌려보냈다.

계약 만료를 한달 앞두고 있었지만 8월부터 이슬람교의 금식기간이 라마단이 시작되면 나지가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일찍 방출한 것.

KIA의 외국인 투수인 트레비스. 스포츠코리아

지난 8월2일 KIA-두산의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진 잠실구장. KIA의 호주 출신 투수 트레비스(29)와 두산의 김민호(42) 코치가 잠시 언쟁을 벌인 것도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다.

이날 KIA의 선발 이었던 트레비스는 4-1로 앞선 2회말 두산 양의지에게 솔로홈런을 얻어맞았다.

이 때 양의지는 타구가 완전히 담장을 넘어간 것을 확인한 후 서서히 1루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운드에 있던 트레비스가 양의지를 향해 "빨리 뛰어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두산의 장원진(42) 1루 코치와 김민호 3루코치가 트레비스를 향해 소리치며 맞대응했다.

이닝이 종료된 후 트레비스가 3루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순간, 김 코치가 다시 한번 트레비스에게 소리를 쳤고 언쟁이 벌어진 것.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뛴 적이 있는 트레비스는 경기 후 "공이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다시 타자인 양의지를 쳐다봤는데 그제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이같은 행동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항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홈런 직후 타자가 과도한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빨리 홈으로 뛰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로 불문율로 지켜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홈런에 대해서 훨씬 더 관대한 편. 국내 투수 타자 사이에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 미국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선수에게는 모욕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

그러나 어쩌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처럼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은 그 곳의 문화와 풍습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게 성공을 위해서는 상책일 듯싶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