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딸’보다 ‘육영수 딸’ 이미지 부각?
위 사진은 고 육영수 여사가 주변에 알리지 않고 판자촌을 방문해 생필품을 전달하고 나오는 모습. 아래 사진은 지난달 31일 우면산 산사태 피해 지역인 서울 서초구 남태령 전원마을을 찾아 피해상황을 둘러보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진출처 ‘나의 어머니 육영수’·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실 제공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00년 쓴 이 책의 곳곳엔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애틋한 감정이 절절히 녹아 있다. 15일은 육영수 여사 서거 37주년이 되는 날이다.
15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되는 육 여사의 제37주기 추도식에는 대선을 1년 앞두고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 일정을 앞당겨 15일 새벽 귀국한다.
한 친박계 인사는 14일 “박 전 대표와 육 여사는 외모나 이미지뿐 아니라 실제 생활습관 등에서도 닮은 부분이 참 많다”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가끔 어머니를 회상하며 수해현장을 다녀온 아버지(박 전 대통령)가 마음이 아파 밥을 드시지 못하면 자식들도 (국가의 고통을 같이 느끼도록) 밥을 못 먹게 했다고 전했다”면서 “박 전 대표가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어머니의 가장 큰 영향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나의 어머니 육영수’에 따르면 육 여사는 가족 앞에서도 맨발을 보이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버선을 신었다. 이런 육 여사의 단정함과 검소함이 박 전 대표를 꼿꼿한 자세와 단아한 옷차림의 대명사로 키웠다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박 전 대표의 행보에서도 육 여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육 여사는 아기를 낳은 아낙네가 양식 한 톨 없이 굶주리고 있다는 내용의 신문을 보고 판자촌을 몰래 방문해 쌀과 미역을 전달하거나 경기도의 나환자촌을 몰래 찾기도 했다. 박 전 대표가 지난달 31일 수해현장인 서울 남태령 전원마을을 조용히 다녀온 것도 육 여사에게서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행동 스타일로 볼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특사로 유럽을 방문했을 때 방문국 국빈이나 재외동포들이 부탁한 내용에 대해 지금까지도 그 진행상황을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매년 5000건의 민원에 대해 일일이 답신하고 그 진행상황을 챙겨온 육 여사를 본받은 것이라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이 밖에 위기상황일수록 침착해지는 모습 등도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육 여사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충청지역은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부동층 성향이 강한 주)로 총선 및 대선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어머니의 말투에 영향을 받은 박 전 대표는 요즘도 무의식중에 간혹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고 한다. 친박계의 한 관계자는 “‘육영수’ 이름은 앞으로 정치권에서 지금보다 더 자주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