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속 각국 환율전쟁 재연 조짐…
위기해결 리더십은 실종
“폭탄 돌리기가 다시 시작됐다. 노래가 멈추기 전에 빨리 다른 국가로 폭탄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글로벌 환율전쟁 재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해 봉합됐던 환율전쟁의 고삐가 풀린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타개할 글로벌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다. 9월부터 미국과 프랑스에서 잇따라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열리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제공조를 이끌어야 할 미국과 유럽은 오히려 위기 확산의 주범으로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상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소 2년간 제로 금리를 유지하기로 한 결정과 관련해 “환율전쟁이 발발하기에 최적의 여건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금리 동결로 약달러가 고착화되면 주요 수출 경쟁국들은 가격경쟁력 하락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를 면할 수 없는 만큼, 자국화폐 절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4일 무려 4조6000억 엔을 외환시장에 쏟아 부어 환율방어에 나섰다. 스위스는 3일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프랑 강세가 계속되자 11일 “어떤 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이 조치가 스위스 프랑의 움직임을 유로에 연동시키는 페그제 도입으로 해석했고 이날 프랑은 달러 대비 5% 급락했다.
중국은 아직까지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감안해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3차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그대로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 한계 드러내는 G20 체제
하지만 위기는 재발됐고 환율전쟁도 재연될 조짐이다. G20은 다음 달 23일 미국, 10월 14일 프랑스에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열고 11월 3일에는 역시 프랑스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금융 불안을 해결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G20 체제의 균열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G20을 통한 국제공조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각 국간 이해관계가 달라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데다 글로벌 공조체제를 이끌 선진국이 위기확산의 주범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지금은 글로벌 신뢰의 위기다. 각국 지도자들이 금융시장의 혼란을 치유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이번 위기가 자칫 파국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극단론도 제기되고 있다. 각국이 환율 갈등에 이은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면 세계 전체의 성장이 떨어지면서 위기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