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임진각, 평화가 울려퍼졌다
15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대공연장에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와 연합합창단, 소프라노 조수미 씨 등 솔리스트들과의 협연으로 인류애의 이상을 담은 베 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한 다니엘 바렌보임이 양팔을 들어 청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광복절, 남과 북이 마주 보는 경기 파주 임진각에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어둑한 하늘, 한 줄기 바람 사이로 음악은 흰 비둘기 떼처럼 퍼져 나갔다. 이날 ‘평화콘서트’는 음악으로 응축된 평화의 메시지였다.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대공연장에 펼쳐진 푸른 잔디밭은 청중 1만여 명으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연주회를 기다렸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영상 메시지에서 “이번 공연을 통해 원곡에 담긴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가 평화를 향한 인류 공통의 염원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솔리스트로 연주에 참여한 소프라노 조수미는 “바렌보임이 추구하는 평화와 인류애의 메시지는 우리 음악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영감과 감동을 준다”고 강조했다.
바렌보임이 지휘봉을 들자 교향곡 ‘합창’의 장엄한 울림이 시작됐다. 10, 20대 젊은 연주가가 주축인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합주력은 완벽하지 않았다. 때로 세부의 합주력이 뭉개졌고 확성장치를 사용한 야외콘서트라는 점 때문에 청각적 만족은 더욱 덜했다. 그러나 임진각에 울려 퍼진 ‘합창’은 전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합창’과는 다른 울림이 있었다. 자유와 압제, 번영과 빈곤이 대립하는 갈등의 땅에 언젠가는 이 화음의 마법과도 같은 평화의 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묵직한 질문이 객석에 던져졌다.
중학생 아들과 이곳을 찾은 주수진 씨(45·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합창’을 작곡했던 것을 생각하며 어려운 상황에서 늘 이 곡을 떠올린다”면서 “남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화합을 이뤄가는 데 음악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효준 씨(71·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음악가 바렌보임이 임진각에서 뜻깊은 공연을 한다기에 왔다”면서 “인류애를 상징하는 ‘합창’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악은 단순히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묶는 것을 넘어 영혼을 동반하게 만드는 것이다.”(바렌보임) 어둠이 내려앉은 임진각에서 빛나는 것은 다만 음악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