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 사로잡은 산해진미… 서해안 전복 으뜸
진정한 산해진미라면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하는데 17세기 초 명나라 때의 ‘오잡조(五雜俎)’라는 문헌에서는 전복을 그중 하나로 꼽았다.
오잡조에서는 용의 간과 봉의 골수(龍肝鳳髓), 표범 탯줄과 기린 육포(豹胎麟脯)는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전설 속 요리일 뿐이고 성성이 입술과 오소리구이(猩脣5炙), 코끼리 코와 낙타 등(象約駝峰)은 세상에 있지만 실제 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세상 부자들이 먹는 산해진미로는 남방의 굴, 북방의 곰 발바닥, 동해의 전복구이, 서역의 말 젖이 있다고 적었다.
우리 문헌에도 우리 근해에서 나는 전복에 대한 평가가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동서남해에 모두 전복이 있지만 울산과 동래, 호남과 제주에서 잡히는 것이 껍데기가 크고 육질이 푸짐하다고 했다. 여기서 잡은 전복이 품질이 좋은 진품(珍品)이라며 극찬을 했다.
이처럼 조선 선비들은 우리 전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17세기 초의 시인 이응희는 전복에 대한 시에서 여러 종류의 생선과 조개 중에서도 우리 전복이 가장 좋다고 읊고 있다.
“해녀들은 바닷속으로 잠수를 한다지/꼬챙이로 바위틈 찔러 단단히 붙은 전복을 따내네/처음 보면 하얀 옥 같지만 자세히 보면 붉은 호박 빛/어패류가 수만 종류지만 으뜸은 우리 동방의 전복”
전복이 귀하고 좋은 해산물이다 보니 회뿐 아니라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회를 초장에 찍어 먹는다는 기록과 함께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전복껍데기에 끓이거나 굽는다는 기록도 있으니 요즘 전복 또는 소라구이와 다를 것이 없다. 또 전복가루를 약과처럼 만들어 먹으면 전복 맛은 변함이 없는데 부드럽기는 두부와 같아 노인들이 먹기 쉽다고도 했다. 또 진연의궤(進宴儀軌)와 같은 궁중연회의 상차림에도 전복찜, 전복초 등 다채로운 전복 요리가 보인다.
“(…)관리가 달려와 성화를 하는데/신선하고 살찐 전복 회로 뜬다며/급하게 관아 주방으로 가져가고/황금빛 나는 전복은 꼬치에 꿰어/서울 벼슬아치에게 올려 보내니/무더기로 쌓인 굴 껍질만/해녀의 빈 그릇을 채울 뿐”
‘실존하는 산해진미’인 전복. 그 명산지 중 하나가 보하이 만에 있는데 최근 오염 사고로 영향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