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기
창비 제공
‘동사무소에 가자/왼발을 들고 정지한 고양이처럼/외로울 때는/동사무소에 가자/서류들은 언제나 낙천적이고/어제 죽은 사람들이 아직/떠나지 못한 곳’(‘동사무소에 가자’에서)
‘나는 어둠 자체를 발견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코인로커 속에서 가장 슬픈 자세는 무엇인가./지금은 붉은 사과가 둥글게 웅크린 채/어둠에 몰두하고 있다./캄캄해지는 것은 사과인가./목적지인가.’(‘코인로커’에서)
시집은 전체적으로 전위시를 표방하지만 무척 감성적인 문구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콕 떼어낸다면 감성적인 편지의 한 귀퉁이에 딱 어울릴 만한.
‘겨울이 가고 가을이 오면/당신이 거기 없겠구나./어디선가 말 없는 소녀가 자라고 있겠구나./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은 아침이 지나간 뒤에/아무것도 알 수 없는 밤이 오네.’(‘돌이킬 수 없는’에서)
‘근육질 눈송이들이 꿈틀거리는 소리로 허공은 가득하다’(‘겨울의 원근법’)든가,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수많은 빗방울들에게 계급과 역할을 분배한다’(‘평균치’)는 상상력도 기발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