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겪은 강남고객들 주가연계증권 ELS로 돌진중”
《 금리 0.01%, 1,800. 숫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금융투자업계이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주인공은 바로 사람들이다.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한 새내기 은행원부터 주식 투자에 잔뼈가 굵은 60대 투자자까지, 숫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금융투자업 현장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주목, 이 사람’에서 다룬다. 》
19일 오전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캐피탈타워에 자리한 신한금융투자 명품PB센터. 단정한 검은색 원피스 차림에 깔끔한 단발머리의 전현진 PB팀장은 약속시간에 딱 맞춰 등장했다. 입가의 미소는 환했지만 은테 안경 뒤의 날카로운 눈빛,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에서는 2001년 9·11테러, 2003년 카드대란에서부터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프라이빗뱅커(PB)의 분위기가 풍겼다. 그는 1999년 입사 초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지역 거액 자산가 고객의 투자 가이드를 맡아온 신한금융투자의 13년차 ‘대표 PB’다.
“아유, 요즘 정신이 없네요.” 노련한 그였지만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후 이어진 이번 폭락장은 힘들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분 간격으로 장세가 변동하다 보니 고객들을 위한 조언도 시시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특히 코스피가 장중 1,680까지 내려간 9일은 어제인 듯 생생히 기억했다.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춰 손절매를 과감하게 조언하거나 반등을 노려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한번 투매심리가 불붙으면 ‘브레이크’가 안 걸리다 보니 고생했죠.”
‘롤러코스터’ 증시에서 그가 가장 안타까웠던 대상은 자꾸 시간만 끌다 결국 손절매 시점을 놓친 고객들이었다. “투자성향상 급락장을 버텨내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든 고객께 주가가 떨어질 때 사흘에 걸쳐 ‘분할 매도’를 하자고 조언했어요.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루시더라고요. 그 사이 주가는 더 떨어졌고 결국 ‘바닥’에서야 팔았죠.” 그는 전체적으로 고객들의 학습효과를 실감했다고 평가했다. “주식투자를 10년 정도 한 고객은 정보기술(IT) 거품, 카드대란 같은 4, 5차례의 위기를 겪었죠. 위기를 또 하나의 기회로 생각하는 분위기라 청담동, 대치동에서는 주식투자를 위한 대기자금이 들어오고 있답니다.” 여유 있는 자산가로서는 지금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 주식 이외의 다른 투자 대안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폭락한 해외증시와 금 투자 등에서 수익을 노리거나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반등을 엿보는 고객이 부쩍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강남권 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가연계증권(ELS)이라고 한다.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반 토막이 나지 않는 이상 수익을 볼 수 있는 구조로 짜인 상품이 많기 때문. “물론 ELS도 위험은 있지만 주가가 하락하면서 오히려 매력도가 커졌습니다.”
그는 증시에 여전히 위험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진단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차·화·정 종목 중에는 반등할 때 매도하려고 기다리는 ‘대기 매물’이 적지 않을 거예요. 당분간은 음식료 등 내수주 위주로 관심을 갖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렇다면 베테랑 PB이자 골드미스인 그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투자하고 있을까. “골고루 하려고 합니다. 주식 직접투자 비중은 최대 20%를 넘기지 않고 채권, 적립식 펀드, ELS 다 하죠.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수익률은 뭐…. 저도 앞으로 내수주 중심으로 투자해보려고요.”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