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귀 활짝 연 위대한 학생이 되야”
《 김석철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68·명지대 석좌교수)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로 수학, 철학, 물리학 등 여러 개의 프리즘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대 캠퍼스, 여의도 마스터플랜, 쿠웨이트 자하라 주거단지, SBS 탄현스튜디오, 중국 베이징(北京) 경제개발특구 등이 있다. 그는 2002년 암 선고를 받은 후 위암과 식도암 수술을 거듭 받은 탓에 목으로 음식을 잘 넘기지 못한다. 음식보다는 독서를 통해 지식을 주로 흡수한다고 농담을 던지는 그는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암은 앎이 됐다”고 말한다. 》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아키반’ 사무실에서 만난 김석철 대표가 자신이 수집한 골동품 앞에서 사진 촬영에 응했다. 3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탁월해지고 싶다면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위대한 학생’이 되라”고 조언했다. 최훈석 기자 neday@donga.com
―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분야에 관계없이 탁월함을 이룬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 자기를 버리는 헌신과 사랑이 있다. 중국의 유학자 주자(朱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잠시 벼슬을 했지만 학자로서 이러한 사실을 매우 부끄러워했고 남은 평생 동안 학문에 헌신했다. 화가 마티스는 췌장암 선고를 받고 3년 동안 아픔 속에서도 휠체어를 타면서 걸작들을 완성했다. 탁월함이란 이런 것이다. 개인, 국가 같은 차원을 뛰어넘어서 자신을 던지는 것, 지극한 사랑 그 자체다. 집념도 필요하다. 나도 암 때문에 죽음이 문턱에 온 순간에도 새벽 3시까지 공부했다. 취푸(曲阜) 프로젝트를 마저 정리하고 논어도 다시 읽었다. 청년 시절에는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자지 않았다. 손의 통증 때문에 붕대를 감은 채 작품을 스케치하던 시절이 있었다.”
“건축 역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공동체의 큰 흐름을 보게 하는 학문으로 우리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해준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하드웨어를 이해하기 위한 모든 학문의 기초다. 인문학의 바탕 없이는 어떤 일에서도 탁월함을 이룰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지혜가 인문학에 담겨 있는데 그것을 공부하지 않거나 모르고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없다. 가장 손쉽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독서다. 물론 뛰어난 사람들 중에는 책을 읽지 않고서 스스로 깨닫는 이들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위대한 인문학자들이 너무나 많지만 특히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문학자를 꼽는다면 러셀과 톨스토이다.”
김석철 대표가 설계한 대표작 중 하나인 서울 예술의전당. 동아일보DB
“영감을 얻는 데 있어 독서는 토지처럼 바탕이 된다. 토지에서 자라는 나무 같은 존재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앨런 튜링이라는 컴퓨터 발명가는 ‘나는 이 세상의 가장 많은 것을 사람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사람에게서 배우라는 말은 각종 모임에 나가 사교활동을 활발히 하라는 뜻이 아니다. 한 번 스치는 인연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다. 튜링은 친구와 풀밭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했던 이야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글을 쓰는 거다. 새 프로젝트를 맡으면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직접 글로 써본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과장해서 생각하게 된다. 마치 만사 다 아는 것만 같다. 기억장치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보다 자신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글쓰기는 생각 및 지식의 부족함을 깨닫는 자기반성과 성찰로 이끈다. 도시 속에서 사람 사이를 걸어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창덕궁에 간다.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하면서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답이 떠오른다.”
―정치인, 행정가 등 많은 유명인들이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안다. 기업 CEO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정태준 DBR 인턴연구원(홍익대 경영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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