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들이 흉년에 먹던 음식… 여름철 별미로
칡은 야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옛날부터 흉년이면 칡뿌리를 캐먹었고 아이들은 군것질로 먹었다.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한 칡이지만 조선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칡을 먹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가뭄에 칡 먹는 것을 보고 우리도 비상식량으로 칡을 식용하는 방안을 찾자고 하는 과정에서 만든 것이 칡국수다.
조선왕조실록에 칡을 먹게 되는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세종실록’에 첫 기록이 보인다. 세종 18년 가뭄이 심하게 들자 조정에서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때 통역인 왜통사 윤인보, 윤인소가 “왜인들은 가뭄에 칡뿌리를 먹으니 우리도 이를 활용하면 흉년을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한다. 세종이 그럴듯하게 여겨 윤인보는 경상도로, 윤인소는 전라도와 충청도로 내려보내 칡뿌리 먹는 방법을 가르치게 했지만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세종부터 성종 때까지 칡을 식량화하는 방안이 논의되며 다양한 이용법이 만들어지다가 마침내 칡가루와 전분을 섞어서 국수를 만드는 법이 개발된다. 그리고 칡국수는 구황식품을 넘어서 여름철 별미로 발전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만드는 비법이 전해진다.
숙종 때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칡국수 제조법이 보이는데 강원도 간성에서 나오는 칡가루로 만드는 것이 가장 좋아 녹두 녹말과 섞어서 국수를 만들면 갈증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칡가루의 품질은 모래땅에서 나는 것이 좋다고 적었다.
원료인 칡가루의 품질을 놓고 따질 정도로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여름철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음식이라고 했으니 칡국수가 이미 별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무렵에는 일본으로 칡국수 원료도 수출했다. 숙종 때 신유한이 일본을 다녀와 쓴 기행문인 ‘해유록(海遊錄)’에 관련 이야기가 보인다.
칡국수는 칡가루와 녹두가루를 섞어서 만드는데 왜인들은 칡가루는 잘 만들지만 고운 녹두가루는 만들지를 못해 조선에서 녹두가루를 구해 중앙 막부에 공급한다는 말이다. 칡가루와 녹두가루가 섞여야 제맛이 나는 칡국수가 조선에서 발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칡국수를 여름철 별미로 꼽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홍만선이 ‘산림경제’에서 지적한 것처럼 칡이 갖고 있는 찬 성질 때문이다. 중국의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칡에는 해독성분이 있는데다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더위를 막을 수 있다고 했으니 여름철 별미국수로 딱 어울리는 성질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