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 잃은 웹OS, 새 변수
“농업국가 시절엔 모든 차가 트럭이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 사람들은 승용차를 몹니다. PC는 트럭 같아요. 점점 덜 쓰입니다. 태블릿 또는 다른 무엇이 PC를 대신할 겁니다. PC 이후의 시대죠.”
지난해 6월,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자매지 ‘올싱스디지털’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도 요동쳤다. 휴대전화 1위 노키아는 삼성전자에 1위를 내줄 판이다. 소프트웨어 1위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애플과 구글에 덜미를 잡혔다. PC 1위 HP는 PC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스마트폰이 열어준 ‘모바일 시대’의 강자이다.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구글이 우선 양강체제를 만들었다. 스마트폰에 집중한 대만의 HTC는 새로운 휴대전화 강자가 됐다. 하지만 기존의 강자들도 그대로 물러나진 않았다.
HP는 PC 사업을 처음부터 재고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또 한 가지 중요한 선언을 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조업을 완전히 정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팜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팜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웹OS’를 이용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만들어왔다. 이 가운데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제조업은 버리고 웹OS는 살리겠다는 뜻이었다.
레오 아포테커 HP CEO는 18일(현지 시간) 투자자들과 가진 전화회의에서 “우리의 웹OS 기기는 어떤 실적 목표도 이루지 못한 채 손해만 가져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웹OS 소프트웨어는 제3자에게 라이선스를 빌려주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가치를 만들어낼 방법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라이선스 사업이란 MS가 벌이는 윈도폰 OS 사업처럼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스마트폰 한 대당 일정액의 로열티를 받으면서 OS를 공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IT 업계에서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가치를 만들겠다”는 말에 무게를 두고 반응했다. 매각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 HTC?
특히 구글 안드로이드폰 판매에서 세계 1, 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HTC는 최근 애플과 MS로부터 각각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당하며 골치를 앓아 왔다. 그런데 스마트폰 관련 특허를 잔뜩 보유한 팜의 웹OS를 인수할 수 있다면 일거에 특허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특허 분쟁은 상호 제소를 통한 합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쟁 당사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핵심 특허를 많이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미국 IT 업계에서는 팜이 보유한 특허를 1600개 정도로 보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핵심 특허일 것으로 추정한다.
시장조사업체 ‘포러스터리서치’의 세라 로트먼 엡스 연구원은 미국 IT 전문지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위기감을 느낀 삼성전자와 LG전자, HTC 같은 제조업체들은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MS와의 제휴만 검토했지만 HP의 발표 덕분에 이제 웹OS 인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말을 아끼면서도 새로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삼성전자 측은 “검토할 게 많다”고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고, LG전자도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으니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 모바일 4강 시대
iOS라는 OS와 아이폰이라는 하드웨어를 함께 만드는 애플, 모토로라를 인수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은 노키아 등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가는 최근 환경에서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삼성전자와 HTC 등이 웹OS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을 이뤄 ‘제4의 강자’로 발전하겠다는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