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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예산안 국회제출 한달 앞… 밤을 잊은 재정부 예산실 ‘지옥의 심의 레이스’

입력 | 2011-08-25 03:00:00

미워할 수 없는 악역…330조 나라살림 짜기 ‘아찔한 줄타기’
책상머리에서 칼자루나 휘두른다고? 시민까지 모셔 하소연 듣는건 아는지…




○ 현장점검 나가면 마음 무거워져

“나랏돈 허투루 쓸 수 없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복지예산과 직원들이 예산 관련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다. 연일 새벽별을 보며 퇴근하는 강행군이지만 말 그대로 ‘대통령부터 노숙인까지’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나랏돈을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왼쪽부터 방기선 과장, 윤숙희 주무관, 정혜경 사무관.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철민이(가명·15)는 내내 손톱만 물어뜯었다. 팔뚝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는데도 “아프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기획재정부 방기선 복지정책과장은 말을 붙여보려고 30분 동안 철민이 옆에 붙어 있었지만 철민이는 고개를 숙인 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를 만난 건 5월 어느 날 서울 중랑구 망우동 서울지역아동센터에서였다. 80조 원이 넘는 대한민국 복지예산의 틀을 짜는 그가 현장 점검을 위해 방문한 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층과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공부를 시키고 특별활동을 돕는 복지시설이다. 철민이는 알코올의존증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았다. 아동센터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법무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겨진 철민이는 이후 아버지와 격리돼 한 복지시설에 위탁됐다. 하지만 철민이를 기다린 건 시설에서 싸움질을 일삼던 형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소년원행은 피하고 다시 지역아동센터로 돌아왔지만 형사가 24시간 체크할 정도로 철민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무서운 아이’가 됐다.

과천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방 과장의 마음은 무거웠다.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한 복지정책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때문이다. 국가가 복지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고, 학교와 지역사회, 민간의 역할은 또 무엇인지, 해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방 과장은 두 달째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오전 2시 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복지가 화두인 요즘 그의 펜 끝에 대통령 지지율부터 노숙인 밥그릇까지 달려 있다.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머리는 3개월 전 아동센터에서 만난 철민이에게 가 있다. 나랏돈이 들어갔는데, 왜 어려운 아이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 걸까. “제 힘으로 단박에 대한민국 복지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올해보다 나은 내년이 되게 만들어야죠.”

여름휴가로 들뜬 8월이지만 과천 재정부 4층 예산실은 전쟁터다. 330조 원에 이르는 대한민국 1년 나라살림의 큰 틀을 확정해 8월 말에는 대통령에게 중간보고를 해야 한다. 7, 8월 예산 시즌에는 한 푼이라도 예산을 확보하려는 부처와 어떻게든 깎으려는 예산실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목표예산 따오기 전까지 오지도 말라”는 도지사의 불호령에 두 달간 과천 여관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22일 재정부 4층 복도에서 만난 산림청 기획재정담당관실의 박도환 사무관은 “산사태 방지를 위한 사업예산 2000억 원을 따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집중호우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등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피해지역 주민들과 언론은 연일 “정부와 지역 자치단체는 뭐 하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결 방법은 돈으로 귀결된다. 예산이 척척 나오면 좋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산사태 예산만 올해보다 600억 원 늘려 신청했지만 복지에다 일자리, 국방 등 돈 들어갈 곳이 허다한데 우리한테 차례가 올지 정말 막막합니다.” 정부대전청사에서 근무하는 박 사무관이지만 한 달째 예산실을 안방 드나들 듯 다니며 눈도장을 찍고 있다.

○ “우리도 죽겠습니다” 만날 승강이

‘늘릴 건 늘리고 깎을 건 깎는다’지만 대부분은 깎이거나 취소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예산실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랏돈을 움켜쥔 ‘갑 중의 갑’으로 부처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이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부처 대기실에서 만난 A부처 예산담당 직원은 “돈 한 푼이 아쉬워 찾아오긴 하지만 솔직히 예산실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진 않다”고 털어놨다.

23일 예산실 421호 부처 회의실에서는 한 광역시 우체국 직원과 담당 예산실 공무원이 예산 배정을 놓고 한창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이 우체국은 사무실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로 바꾸겠다며 예산을 신청했다. 절전을 위해 LED 조명을 권장하는 게 정부 시책이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바꾸는 것이 문제였다.

“꼭 다 교체해야 하는 건가요?” “우리도 죽겠습니다. 지시가 그렇게 내려왔어요. 20년 동안 써온 거라 수명도 다 됐고요.” “문제는 기존 형광등과 LED의 단가 차이인데….” “개당 5만4000원 차이 납니다.” “확실해요? 심의 들어가면 문제 될 수 있으니 꼼꼼히 챙겨야 해요. 다른 부처가 제시한 단가와 차이가 나면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체국 예산담당 직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높지 않다. 오히려 낮춰 잡은 것”이라고 항변했다. 진짜 공격은 지금부터다. “단가 알아봤어요?” “그게… LED는 제품이 다양하지 않습니다.” “정말요? 안 그럴 것 같은데요. LED로 교체한다고 이렇게 예산을 많이 신청한 데가 없어요.” “네….” “우리가 낸 단가가 모든 부처 LED 가격의 기준이 돼야 합니다. 지금 이 자료만으로는 예산 지급 못합니다. 단가 자료 만들어 다시 얘기합시다.”

‘예산은 숫자로 쓰인 정책이다.’ 예산실 직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혹자는 “세금 걷어서 여기저기 나눠주는 게 뭐 힘든 일이냐”고, 또 누군가는 “각 부처가 신청한 예산 이리저리 칼자루 휘둘러 자르면 그만 아니냐”고 하지만 330조 원의 나랏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계획을 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김동연 예산실장은 “예산은 정치와 정책, 여론, 심지어 하늘의 뜻까지 담아야 하는 종합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수천, 수만 가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자원을 배분하고 금액을 조절해 정부의 색깔과 정책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예산 편성이라고도 했다.

23일 오전 11시 재정부 7층 대회의실. 예산실은 주부, 노인, 대학생, 자영업체 사장 등 이른바 ‘정책고객’을 초청해 나랏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를 듣는 간담회를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한 ‘2013년 균형재정’은 대학 등록금, 건강보험 지원, 양육수당 확대 등 사실상 복지사업들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심의하기도 바쁜 시간을 쪼개 간담회를 마련한 것은 예산의 수요자인 국민의 목소리를 듣자는 취지에서다.

여섯 살과 네 살짜리 두 아이를 둔 주부 박혜란 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양육수당을 받으러 동사무소에 가면 직원이 모른다, 안 된다고만 해요. 장애아동 지원도, 문화바우처 사업도 제가 알음알음 알아서 간 거지, 한 번도 공무원에게 먼저 정보를 들은 적이 없어요. 정부 지원으로 큰 도움을 얻고 있는데, 주변 또래 엄마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이런 제도를 아는 사람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요.”

지난해 아이를 낳고 복직했다는 주부 임윤희 씨도 맞장구를 쳤다. “보건소에서 유아 예방접종이 무료라고 하지만 토요일에는 문을 닫으니 저 같은 직장인 엄마는 병원에 가서 돈을 내고 맞혀야 해요.” 이에 김 실장은 “복지부와 논의하겠다. 박물관도 야간개장을 하는데 보건소라고 못할 게 없다”고 대답했다.

○ 복지 우선순위 설정이 가장 난제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김 실장의 표정이 무겁다. 책상머리에서 구상하던 복지와 국민이 느끼는 복지의 온도 차를 실감했다. “복지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짜는 게 참 어렵습니다. 복지 해서 나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어떤 사업이 더 급한지, 누구한테 우선 지원할지를 정하는 과정이 참 쉽지 않습니다.” 회의에 배석한 방 과장은 메모지를 꺼내 ‘양육수당’이라는 단어를 적고 열심히 동그라미를 친다. 작년까지 만 24개월 미만이던 지원 대상을 36개월 미만으로 늘리고, 수당도 월 10만 원에서 10만∼25만 원 차등지원으로 확대했지만 여전히 정치권과 국민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기초노령연금 확대 방안, 기초수급대상자 부양의무기준 확대 등 복지예산은 온통 ‘확대’뿐이다. “양육수당은 늘리긴 할 겁니다. 문제는 기준이에요. 월 5만 원이 아쉬운 사람이 참 많습니다.” 방 과장은 바로 복지부 담당 과장에게 전화를 건다. “양육수당 관련 자료 좀 챙겨 주세요. 예산을 더 깊이 있게 검토해야겠습니다.”

지난해 정부는 복지예산 때문에 뭇매를 맞았다. 경로당 난방비와 결식아동 급식예산을 삭감했다는 이유에서다. 애초부터 지자체 사업이던 것을 2년 한시로 중앙정부 사업으로 돌렸다가 원래대로 환원한 것인데도 일부 시민단체는 “이명박 정부가 굶는 아이 밥그릇을 빼앗았다”고 여론을 몰아갔다. 이골이 날 법도 하지만, 오해를 오해라고 말하지 못하는 예산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24일 0시 10분. 신혼 4개월째인 한 사무관이 자리를 뜨면서 “일찍 퇴근하게 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구두를 손에 들고 까치발로 살금살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한 사무관은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하더니 한참을 제자리 뛰기 하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일주일째 밤을 새우는데 집중이 안 돼 몸 좀 풀었습니다.”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까지는 이제 한 달가량 남았다. 힘들지 않으냐는 말에 씩 웃으며 “정신 차리고, 얼른 심의자료 챙겨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예산 심의가 24일 0시 30분부터 열린다고 했다. 대한민국 나라살림 330조 원은 그렇게 한 땀 한 땀 완성돼 가고 있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