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테면 비즈니스맨들이 입는 슈트는 상의와 하의의 화학적 결합이지만, 상의에 대한 관심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바지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지는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옷차림의 수준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아이템이다. 특히 겉옷과 따로 노는 화려한 타이가 멋진 이미지를 줄 것이란 헛된 믿음만큼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미신 하나가 남자들이 바지를 길게 입어야 키가 커 보인다는 근거 없는 정보다. 하이힐을 신는다면 모를까, 바지가 구두 굽을 덮을 정도로 길면 하체의 무게중심이 더 내려가면서 다리는 오히려 더 짧아 보이고 발목에서 뭉친 바짓단은 다리를 휘어보이게 만든다.
몸에 잘 맞는 재킷이 남자를 다섯 살 젊어보이게 하는 것처럼, 적절한 바지는 사람이 움직일 때 밑단이 구두 끝에 닿을락 말락 하는 정도가 좋다. 또 바지 실루엣은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구두에 가까이 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는 형상이 실제 체형과 부합하고 착용감도 좋다. 바지의 통이 넓으면서 길이만 짧게 되면 아래로 좁아지는 다리를 박스로 억지로 감싼 듯한 실루엣이 연출돼 몸의 조화가 깨져버린다. 바지를 입고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바지 끝에서 구두가 반 정도 보이도록 바지 넓이를 설정하면 된다.
남훈 제일모직 란스미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