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金의 역사, 동양은 銀의 역사
○ 몽골제국 지폐와 미국 달러의 공통점
금은 예로부터 인플레이션 위험을 줄이는 수단으로 각광 받아 왔다. 금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금값은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원래 보유한 금의 양만큼 화폐를 찍어내는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1792년 화폐법(Coinage Act)을 만들었을 때 금 1온스의 값은 18.3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금값 조정이 이뤄졌지만 1971년 이전에는 은행에 35달러를 내면 금 1온스를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베트남전 등으로 생긴 부채와 재정적자로 미국의 금 보유량이 갈수록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본위제 폐지 이후의 달러 통화량 증가는 돈의 가치를 떨어뜨렸고, 2000년대 이후 거듭된 금융위기는 안전자산인 금값의 상승을 가져왔다.
교초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자금으로도 쓰였다. 1차 일본정벌(1274년) 때의 막대한 지출은 몽골이 남송을 정복하면서 얻은 세수로 충당할 수 있었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은 “몽골의 정복전쟁은 교초의 태환 준비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 초점이 석유자원 확보에 맞춰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 제국은 말기로 접어들면서 국가 유지와 라마교 행사 등에 들어가는 막대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교초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은 태환 기능을 잃은 교초는 물가 상승을 가져왔고, 이는 원 제국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 지금까지 채굴된 금 15만8000t
금도 다른 여러 가지 재화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값이 오르내린다. 최근의 금값 상승 역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함으로써 일어났다.
또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금 보유량을 늘리려 하는 것도 수요 증가의 요인이다. 중국 정부의 금 보유량은 1054.1t으로, 미국(8133.5t)은 물론이고 독일(3401t)이나 이탈리아(2451.8t)보다도 적다(세계금위원회·WGC 2011년 8월 자료). 여기에다 금값 상승에 따른 민간의 금 투자도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금의 공급량은 수요와 반대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채굴된 금은 약 15만8000t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채굴할 수 있는 금의 양이 6만∼7만 t이라고 본다. 게다가 함량 높은 양질의 금맥이 줄어 채굴 비용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금 공급이 늘면 당연히 금값이 떨어진다. 금을 화폐로 썼던 예전에는 통화량 증가로 물가 폭등이 일어나곤 했다. 스페인의 남미 정복 이후 신세계에서 유입된 금과 은은 유럽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1998년에는 금융위기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 덕분에 국제 금값이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 금에 비해 저평가된 은
은은 국가 간 무역의 화폐로 많이 활용됐다. 예전에는 아랍권과 중국이 은본위제도를 운영했지만, 세계 패권이 유럽으로 넘어가면서 금본위가 득세하게 됐다. 아편전쟁은 중국에서 차(茶)와 도자기를 수입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보던 영국이 적자 보전을 위해 아편을 판 것이 발단이 됐다. 영국은 중국에 수입품 대금으로 은을 지급했고, 중국에만 일방적으로 은이 계속 쌓여갔다.
그렇다면 앞으로 금값과 은값은 어떻게 될까. 많은 전문가는 달러 약세 등을 고려할 때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금값이 올해 말엔 온스당 2500달러까지 오른다고 봤고, 스탠더드차터드(SC)는 금값이 앞으로 5000달러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금값 상승세가 실수요가 아닌 기대수요에서 나왔으며, 세계 경제가 안정되면 급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많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은은 금보다 산업용 원자재 성격이 강하며,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