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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먹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입력 | 2011-08-27 03:00:00


구성된 정물-김용관, 그림 제공 포털아트

부서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20대 신입사원이 술에 취한 채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대리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습니다. “직장생활이 힘든 게 아니고 먹고사는 일이 힘든 거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 몰라?” 그러자 신입사원이 눈을 빛내며 응대했습니다. “그럼 김 대리님은 짐승처럼 오직 먹기 위해서만 사나요?” 신입사원의 말이 씨가 되어 술자리 분위기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부류와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어디 있냐고 주장하는 부류로 나뉘어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고 기어이 술자리는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참 먹고살기 힘들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보릿고개가 돌아온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시절도 아닌데 왜 이렇게 먹고살기가 힘든지 모르겠다며 삶을 버거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먹고산다’는 말은 가진 것 없는 서민 인생의 리얼리티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서민만 먹고사는 문제에 골몰하는 게 아닙니다. 대형서점에 가면 ‘잘 먹어야 오래 산다’는 것을 강조하는 온갖 건강 식이요법 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컨대 잘살거나 못살거나 먹는 문제에 대한 집착에는 하등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무엇을 먹는가가 다를 뿐.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합니다. 출옥한 뒤에도 ‘빵 한 조각’의 원죄 때문에 힘겨운 인생의 파노라마를 겪게 됩니다. 19세기의 장발장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는 너무 잘 먹어서 비만과 다이어트에 시달리는 21세기의 호사족입니다. 과음, 과식으로 건강을 해치고 온갖 중독에 사로잡혀 자신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생존이 아니라 생활의 각박함에 시달리며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학교 급식을 놓고 정치권이 치열한 투표 공방을 벌이고 서로 승리했다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승자는 언제나 아이들이어야 하고 그들에게 절실한 건 무한대의 사랑과 보살핌인데도 어른들은 아이들마저 편 가르기 정쟁의 제물로 삼는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밥그릇을 놓고 정치권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역시 정치적 생존 욕구, 마음의 각박함이 만들어낸 후안무치와 아전인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약을 먹는 것보다 음식을 제대로 먹는 게 낫고, 음식을 제대로 먹는 것보다 걷는 게 낫고, 걷는 것보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 모두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잘 먹어야 할 것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남의 인생을 해칠 수 있고,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자신의 인생까지 망칠 수 있습니다. 만병의 근원이 먹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면 건강을 해치는 으뜸은 누가 뭐라 해도 마음을 잘못 먹는 일입니다. 오늘, 한 끼쯤 식사를 거르고 마음을 편하게 먹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