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실장.
산술적 계산을 해보면 처음부터 승산이 아주 낮은 게임이었다.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투표율 33.3%를 넘기는 것은 여야가 경쟁하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3분의 2(66.7%)가 참여해 과반수 득표를 하는 것과 같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한 후보의 전체 유권자 중 득표율이 31∼34%였다. 17대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후보는 531만 표 차로 대승했지만 전체 유권자의 30.5%를 득표했다. 대통령 선거일은 휴일이고 나라가 요동치는 선거전을 치르는데도 총유권자 득표율 33.3%를 넘기기가 이처럼 힘겹다.
오 전 시장 측은 주민투표를 앞두고 막판에 서울시장 직을 걸면 서울지역 한나라당 당협위원장들이 비로소 자기 일처럼 움직일 테고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이번 주민투표율 25.7%는 6·2지방선거 때 오 전 시장이 얻은 총유권자 득표율 25.4%보다 0.3%포인트 높다. 오 전 시장 지지자들만 고스란히 나와 투표를 한 셈이다. 민주당은 투표 거부전략으로 무상급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기권자까지 자기네 몫으로 챙겨갔다. H는 칼럼을 통해 ‘주민투표에 시장 직을 걸면 서울시장 신임투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말려봤지만 ‘선명하고 강한 승부’를 요구하는 목소리 앞에서 힘을 얻지 못했다. 물론 시장 직을 연계하지 않았더라면 투표율은 더 떨어졌을 것이다.
투표의 내용도 난도(難度)가 높았다. 투표용지의 위 칸은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였다. 주민투표장에 나온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들고 투표소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와 “나는 무상급식 반대인데 어디다 찍어야 하느냐”고 묻더란다. 질문의 내용을 짚어보면 위칸에 찍으러 온 유권자로 짐작이 됐지만 투표소 선거관리위원은 선거법 위반이 될까봐 위칸에 찍으라는 설명을 못해주었다. 이번 주민투표가 남긴 교훈이 있다면 이해가 복잡하게 엇갈리고 설명이 어려운 복지 포퓰리즘 정책을 주민투표에 부쳐서는 정확한 민심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매달 1인당 교육예산 5만 원이 부잣집 초중고교생의 점심을 사주는 데 쓰이기보다는 학교시설 개선이나 가난한 집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데 활용되는 것이 사회정의(正義)에 부합한다. 미국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복지를 꾸려나가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하지만 공짜는 우선 입에 달고 재정건전성 악화는 멀리 있다. 3무1반(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반값 등록금)의 복지 포퓰리즘이 낳을 폐해를 설명하기는 복잡한데 “우리 경제수준에서 밥 한 끼 정도는 그냥 먹일 수 있지 않느냐”는 정서적 호소는 살갑게 와 닿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이 다수인 도의회와 빅딜을 해 올해부터 31개 시군 전체에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은 TV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로서 얻은 명성을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한 뒤 굴곡 없이 고속성장을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사자의 용맹성은 있지만 치밀함이 부족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는 서울시의회와 대립하며 6개월 넘게 출석을 거부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민이 선출한 시의회 의원들과 대화를 하고, 때론 시의회의 억지에 시달리면서도 임기를 끝까지 꼿꼿하게 채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 식물시장으로서의 연명을 거부하는 결단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인지, 그로서도 고민이 컸을 것이다.
反포퓰리즘 아이콘 될 수도
오 전 시장은 주민투표 패배 후 한 여론조사에서 2017년 대선후보 1위로 떠올랐다. 나라 곳간이 비어 국민이 반(反)포퓰리즘의 아이콘을 요구하는 시대 상황이 전개된다면 다시 정치무대에 복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장 직의 중요성이나 주민투표 과정에서 보여준 전술적 미숙함을 교량(較量)해보면 정치인 오세훈의 손익계산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