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한결같은 갈채, 발라드를 예술로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한국 발라드의 황태자’ 신승훈이 그의 최대 성공작인 ‘보이지 않는 사랑’을 열창하고 있다. 그는 한국 가요계의 주류 장르인 발라드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아일보DB
그는 그렇게 20년을 걸어 왔다. 온갖 뒷담화의 추문이 난무하는 비정한 정글 속에서 수많은 스타와 트렌드가 일회성 소비재처럼 명멸해 갔지만 데뷔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의 이름과 노래들은 대중음악이라는 혼돈의 경기장에서 주류 최정상만이 누릴 수 있는 권위의 광휘를 잃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통산 앨범 판매량 1700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금자탑과 언제나 매진의 행렬을 불러오는 명품 콘서트라는 브랜드를 움켜쥔 것이다.
이것은 우연의 기적이 아니다. 그는 서태지나 임재범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탐욕적이고 소모적인 숱한 예능 프로그램이 자행하는 약탈의 먹이가 되지 않았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앞세워 단숨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그의 데뷔 앨범(1990년)의 선풍을 아련히 떠올려 본다면 그는 탄생의 첫발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전에서 통기타를 치며 업소에서 노래 부르던 그의 데모 테이프는 거의 모든 메이저 음반사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또 특출한 미모나 개성적인 매력을 지니지 못한 마스크 때문에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도 한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지내야 했던 어두운 시간들이 그에게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경로를 일러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1980년대 주류 한국 대중음악의 위대한 성과인 조용필과 이문세, 그리고 변진섭이 획득했던 유산을 종합하는 것이었다.
1920년대 말의 대공황 시대 무성 영화시대가 마침표를 찍으며 등장한 뮤지컬 영화 속의 낭만적인 선율이 대중의 정서를 사로잡으면서, 3화음을 기본으로 한 AABA 형식의 32마디 중심의 솜사탕 같은(Soft & Mellow) 노래가 그 완벽한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 스탠더드 팝은 1950년대 로큰롤의 선풍에도 주류의 위용을 잃지 않았으며, 사랑과 이별의 주제는 모든 장르의 예술사가 증명하듯이 주류의 인프라를 구축했고, 10대 소녀 구매자들이 음반시장의 주력층으로 부상하게 되는 1980년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승훈은 이 역사적 토대 위에서 발라드의 내면과 외관을 더욱 정교하게 진화시킨다.
무려 14주간 1위를 지킨 그의 생애 최대 성공작 ‘보이지 않는 사랑’은 베토벤의 가곡 ‘Ich Liebe Dich’를 도입부로 초청하면서 순식간에 장조에서 단조로 분위기를 전화하며 마이너 발라드의 정수를 구현한다. 이 노래를 구성하는 3개의 주제선율은 점층적으로 강화되는 감정의 드라마를 웅장한 스케일로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은 한국의 러브 발라드가 예술적으로 완성되는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는 동시대의 경쟁자인 서태지와 싱어송라이터라는 요소 말고는 모든 면에서 대척(對蹠)적이었다. 서태지가 표상하는 새로운 의제 설정과 신승훈이 일관되게 보여준 위안의 공감 능력은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를 역동적으로 승화시킨 두 본질이었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