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객들을 되레 웃겼던 金추기경…
‘죽음은 통과의례’ 달관한 법정스님…
25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앞마당에서 자신이 조각한 관세음보살상 앞에 서 있는 조각가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성모상을 닮아 유명해진 이 관음상은 천주교와 불교의 아름다운 만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성상으로 남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관세음보살상이 머리에 쓴 관이 무엇입니까.” “화관(花冠)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병은 무엇입니까.” “정병(淨甁).”
“손바닥이 이쪽에서 보이도록 만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구고(救苦).”
1999년 여름, 원로 조각가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80)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에 길상사 회주였던 법정 스님이 찾아왔다.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으로 전국의 성당에 성모상을 세워온 최 교수에게 관음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다.》
2005년 서울 돈암동성당 50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함께. 바오로딸 제공
최 교수가 자신의 예술과 신앙에 관한 에세이집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바오로딸)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에 종교적 정신적 스승으로 다가왔던 두 사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최 교수는 “성모상과 관음상은 영원한 어머니로서 대자대비이고 큰 사랑이며, 맑음과 깨끗함, 고귀함과 온화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성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 추기경에게 “성모상을 만들던 내가 관음상을 만들면 천주교에서 나를 파문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김 추기경은 “일본에서도 천주교가 전파된 초기에 관음상 한 귀퉁이에 작은 십자가를 표시해 기도를 드리며 박해를 피했던 일도 있다”며 격려했다.
어느 날 법정 스님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 삼청터널을 지나면서 사람을 맑게 해주는 ‘정화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법정 스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갈증’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종태 교수.
지난해 3월 법정 스님 입적 5일 전 최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장익 주교(전 천주교 춘천교구장)와 동행한 최 교수에게 법정 스님은 일어설 수 없음에 “원(願)은 여전한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스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며칠 후 퇴원할 것”이라며 “강원도 산골 집에 가서 눈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내오라고 해서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씩 나눠 먹었다. 최 교수는 “법정 스님이 눈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은 죽는 날까지 순수함, 맑고 향기로움을 추구하고자 했던 바람이었던 같다”고 전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