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옷 벗고 사랑 실천한 예수님처럼…”
《“몇 해 전 대구 동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52세의 남성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별다른 잔병 없이 살던 그는 갑자기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처음엔 헛웃음을 지으며 (병을) 부인했죠. 그러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내가…’라며 분노에 휩싸이는 걸 봤습니다.” 대구 범어교회에서 호스피스 봉사팀원으로 활동하는 이정우 씨. 한 주에 두 번, 그가 시한부 환자를 찾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와 함께 8년 넘게 봉사해온 신자가 다섯 명. 시간 날 때 틈틈이 마음과 힘을 보탰던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열기 속에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달 30일 그를 만났다. 그는 예전에 만난 암 환자를 떠올리며 “인간은 어느 때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하게 될까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의 절망과 분노가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그에게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낸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도울 수 있다’는 희망을 봤죠.”》
대구 수성구 범어교회는 헌신적인 봉사활동과 다양한 문화강좌로 지역 주민과 소외계층,타 종교인들에게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영일 담임목사
범어교회는 1906년에 세워졌다. 교회가 있는 범어동의 ‘범어(泛魚)’는 마을의 형상이 물고기가 냇물에 떠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일제의 탄압과 6·25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신앙과 이웃사랑을 잃지 않고 100여 년을 이어왔다. 3명으로 시작한 이 교회는 지금 출석 신자가 4500명에 이른다.
5월에는 충북 청원군 청남대로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등 60여 명이 봉사팀과 소풍을 다녀왔다. 공장 프레스에 손을 잃은 여성도, 앞이 보이지 않아 소풍 한 번 갈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 남성도 오래만의 외출에 활짝 웃으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장애인들에게 잠시의 외출은 큰 선물이다.
신자들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도를 하자거나 교회에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서수환 씨는 “우리가 봉사하는 이유는 그저 이분들의 웃음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고 말했다.
범어교회는 매년 지체장애와 시각장애로 외출이 불편한 60여 명의 이웃들과 봄맞이 소풍을 간다. 범어교회 제공
교회 1층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아이 엄마 10여 명이 교육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운동복을 입은 주부들이 얼음 음료로 땀을 식히고 있었다.
700명이 들어갈 수 있던 교회 건물이 비좁아 고민 끝에 새 교회를 건축한 뒤 2009년 이곳으로 이전했다. 그 대신 낱낱의 작은 공간도 지역사회와 소외된 이웃을 위한 공간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번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범어교회는 ‘서포터스 시민 운동본부’를 조직해 응원과 통역 등의 분야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봉사단 운영에 필요한 비용도 교회에서 많은 부분을 후원한다.
“아름다운 일과 공간은 많은 사람과 함께할 때 더 값지고 행복하잖아요. 교회가 그래야 되는 것 아닐까요?” 장 목사의 말이다.
대구=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