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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음식이야기]덮밥

입력 | 2011-09-02 03:00:00

풍년 기원하며 먹던 음식… 11세기 이후 발달




맛의 세계는 오묘하다. 똑같은 재료라도 먹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밥에 반찬을 얹은 덮밥은 같은 재료라도 밥 따로 반찬 따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그렇기 때문에 밥 문화권인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모두 덮밥이 발달했다. 우리만 해도 제육덮밥, 오징어덮밥, 버섯덮밥 등 다양한 덮밥이 있다. 일본도 장어덮밥, 계란덮밥 등 여러 종류의 덮밥인 ‘돈부리’가 있고 중국에도 마파두부덮밥과 같은 ‘거판(盖飯)’이 있다.

특별히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 덮밥에 무슨 역사가 있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특별한 날, 소원을 빌며 먹던 음식인데 토지의 신께 풍년을 기원하고 수확을 감사하며 먹었던 음식으로 추정된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입춘과 입추 후 닷새째 되는 날인 토지의 신께 제사를 지내는 사일(社日)에 고기와 채소를 밥에 덮어서 먹는데 이것을 사반(社飯)이라고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이 12세기 중국 문헌인 맹원로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나온다.

“돼지고기인 저육(저肉)이나 양고기(羊肉), 혹은 염통, 가슴살, 곱창, 허파, 또는 오이와 생강 등을 바둑돌 모양으로 잘라서 맛있게 양념한 후 밥에 덮는다. 손님을 초청해 나누어 먹는다.”

사반이라는 음식의 구조가 지금의 제육덮밥을 비롯한 각종 덮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으니 한중일 삼국에서 먹는 덮밥의 뿌리를 여기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사반은 고문헌 중에서도 송나라 때에 집중적으로 보인다.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에는 11세기 북송 철종 때 수렴청정을 하던 태황태후가 병이 들어 신하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그날이 마침 사일이어서 사반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13세기 남송의 수도인 지금의 항저우 풍경을 묘사한 ‘무림구사(武林舊事)’라는 책에도 사일에 고기덮밥을 나누어 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왜 토지신께 제사를 지내는 날에 고기덮밥인 사반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조정에서는 관리들에게 보너스로 고기를 나눠 주었던 모양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한나라 재상으로 건국공신인 진평(陳平)이 이날 관리들에게 고기를 공평하게 분배했다고 하고, 한 무제 때 재상인 동방삭도 사일에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고 나온다. 고기를 분배하면서 고기덮밥을 먹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사반을 먹는 풍습은 중국 송나라 때 정착해 퍼졌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고기덮밥의 뿌리는 깊다. 우리의 경우 조선 초기부터 사반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일본도 돈부리 중 장어덮밥은 19세기, 쇠고기덮밥은 메이지 유신 이후 발달했다고 하지만 14∼16세기인 무로마치(室町) 시대 덮밥과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은 7세기 당나라 사람인 위거원이 쓴 ‘식보(食譜)’에 계란과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덮밥의 맛이 특별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진작부터 밥에 각종 재료를 얹어 먹었던 것이다.

물론 사반이 고기덮밥의 기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덮밥의 발달이 사반과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가 먹는 제육덮밥이나 오징어덮밥도 대충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 소원을 담아서 먹던 경건한 음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