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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52세 이상, 마음은 청춘이지만 아무도 청춘이라 불러주지 않는 ‘서글픈’ 청춘들이 기꺼이 노래하기 위해 모였다. 노래하면서 신나게 놀아보기 위해 모였다. 성악가도 있고, 음악선생도 있지만 시각장애인도 있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도 있고, 담즙 주머니를 차고 나온 환자도 있었다. 농구선수도 있고, 배우도 있고, 의사도 있고, 최고경영자(CEO)도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두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평균 나이 62세의 단원들. 화면을 예쁘게 채워주는 미남미녀 군단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손에 땀을 쥐는 극적인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시선이 간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도대체 사람들은 ‘조금 오래된 청춘들’의 무엇에 공명하는 것일까?
52세이상 ‘서글픈 청춘들’모여 노래
합창은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혼자선 완성시킬 수 없는 노래다. 지휘자로서 합창의 핵이 되기 위해 가수 김태원은 방송생활 27년 만에 처음으로 안경에서 색을 뺐다. 그동안 감춰왔던, 아니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눈을 보여주기 위해서고, 완전히 소통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이제 삶과 사람, 사랑, 이 세 단어가 만나면 노래가 되고 의미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합창의 지휘자는 혁명의 리더다. 그의 색깔이 전체 분위기를 만든다. 음악을 아는 사람, 좌절을 겪은 사람, 한가락 했던 사람, 외로운 사람, 아픈 사람, 그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서 지휘자가 이끌어낸 분위기는 따뜻함과 그리움이었다. 좋은 리더로서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 가진 기술을 부드럽게 녹여 바탕과 기둥을 세우고, 노래 부르는 일이 너무 좋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살을 붙인다. 나이가 주는 내공에 사랑을 입혀 그리움의 노래를 만든다.
평균 나이 62세 단원들의 모습을 통해 ‘나이 듦’이라는 것이 흐르는 것을 흐르게 둘 수 있고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리움이 아찔하고 위험한 열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베이스처럼 든든하게 감싸주는 정서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래가 자연스러운 자리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삶의 무게에 눌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이의 무게에 눌려 설렘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병마의 기세에 눌려 기진맥진했던 사람들이 표정을 풀고 에너지를 얻는다. 노래를 하면서 그들은 이제 누구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누구의 아내도, 남편도 아니었다.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며 과거에 잡혀 사는 고독한 노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열정이었고, 의욕이었고, 꿈이었고, 동료였고, 노래였다.
힘껏 부르며 인생 긍정하는 법 배워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노래하면서 단원들은 알게 된다. 그들을 힘들게 했던 건 나이도, 병마도, 은퇴도, 가족도 아니었음을. 나이 뒤에 숨어, 체면 뒤에 숨어, 병마 뒤에 숨어, 무기력증 뒤에 숨어 화석처럼 굳어진 마음이었음을. 그들의 노래가 빛이고 소금인 것은 그저 자신들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자기 속의 깊은 꿈이 올라와 인생 전체를 치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휘자 김태원의 말은 여러 번 곱씹을 만하다. “나이라는 룰 때문에 저지당하는 건 인종 차별과 같다”고. 그렇다. 저지당해서도 안 되지만 스스로 저지해서도 안 된다. 평균 나이 62세의 빛나는 눈빛이 보는 사람을 눈물짓고 가슴 먹먹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고 보니 진정한 노래는 혁명이다. 새로운 삶, 새로운 열정으로 흐르게 하며 새로운 꿈을 꾸게 하기 때문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