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우울증… 천식… 그날이후 2만7000명 삶도 무너졌다
9·11테러 직후 소방대원으로 현장 구조 활동을 벌이다 천식을 10년째 앓고 있는 해럴드 스카펠하우먼 씨, 뉴욕경찰 수사관으로 현장에 투입돼 잔해를 치우는 임무를 맡았다가 아직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앤서니 야코피노 씨, 역사 현장을 보존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리처드 짐블러 WTC 생존자네트워크 대표(왼쪽부터). 사진 출처 뉴스데이
1일 새벽 미국 캘리포니아 주 멘로파크 시 인근 자택에서 잠을 자던 해럴드 스카펠하우먼 씨는 헉헉대며 잠에서 깼다. 자다가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멘로파크 소방보호구역 소방대원이던 그는 2001년 9·11테러 직후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WTC) 붕괴 현장 구조작업에 투입됐다. 구조작업은 소방관 및 구조요원 343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했지만 평생 자부심으로 남을 만한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후 어느 날부터 한밤중에 숨쉬기 힘들 때가 잦아져 어느새 10년째 이어지는 고질이 됐다.
뉴욕경찰 수사관이었던 앤서니 야코피노 씨는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유나이티드에어라인 175기가 WTC 남쪽 빌딩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뉴욕 롱아일랜드 고속도로 위 출근길에서 목격했다. 급하게 현장에 도착한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그는 시신을 찾는 일을 돕고 시신 매립지에서 잔해를 옮기는 일을 했다. 야코피노 씨는 뉴욕데이 인터뷰에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과 상실감을 느꼈던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야코피노 씨는 9·11테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는 1000여 명의 뉴욕 롱아일랜드 주민 중 한 명이다. PTSD는 큰 사고나 전쟁 등을 겪은 이후 찾아오는 일종의 공황장애다. 테러로 인한 직접적인 희생이 아니더라도 테러현장을 목격하는 간접적인 경험만으로도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남기는 것이다. 9·11테러 직후 PTSD 진단을 받은 롱아일랜드 주민 5000여 명 중 20%가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그날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전체로는 8600여 명이 여전히 이 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야코피노 씨의 주치의인 롱아일랜드대 9·11가족센터장 토머스 더마리아 교수(정신의학)는 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도 9·11테러가 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새로운 환자들이 센터로 찾아온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가 줄어야 하는데 PTSD 환자는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 상처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다는 게 의학계에서도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PTSD를 포함해 후유증을 앓는 것으로 등록된 사람은 총 2만7000명에 달한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