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의 전셋값 변동폭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수요자가 선호하는 소형 아파트의 전세시세 상승률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해 향후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소형 전세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춘 부동산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형 중심으로 치솟는 서울의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거래 침체와 금융권의 대출 제한 등 악재가 겹쳐 조만간 경기 지역으로 전세시장 불안 현상이 전파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4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월간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 조사결과에 따르면 8월 전셋값은 7월보다 서울은 0.52%,수도권 0.58%, 신도시는 0.56%가 각각 올랐다.
이 중 서울의 전세가격 상승률이 0.5%를 넘은 것은 지난 1월 0.63% 이후 7개월만에 처음이다.
월별 전세가격 변동률을 면적별로 구분하면 66㎡(20평형) 이하 소형 아파트의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지난달 서울지역 66㎡ 이하 아파트의 전셋값 상승률은 0.73%로 올해 들어 가장 높다. 전세대란의 여파가 이어지던 지난 1월 66㎡ 이하 서울 아파트의 상승률(0.66%)도 8월보다 낮다.
수도권과 신도시의 평균 전세시세는 1월(수도권 1.25%, 신도시 1.55%) 등 연초보다 안정된 모습이지만 소형 면적만 따지면 상승곡선이 가파른 편이다.
지난달 66㎡ 이하 아파트 전셋값은 전월 대비 수도권이 0.82%, 신도시가 0.88% 각각 상승했다.
국민은행의 월별 전세가격 조사결과를 봐도 지난달 서울의 전세가격은 7월보다 1.3% 올라 3월(1.4%) 이후 가장 변동폭이 컸다. 8월 전국의 평균 전셋값 상승률은 1.1%로 4월(1.2%) 이후 처음으로 1%를 넘었다.
◇수요자 "매매·월세 싫어" VS 공급자 "월세·반전세 좋아"
그중에서도 1~2인 가구의 증가와 낮은 가격부담으로 소형 아파트의 인기가 가장높은 데도 2000년대 들어 한동안 중대형 위주로 신규 분양이 이뤄진 탓에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는 현상도 전세난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D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감이 전혀 없으니까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는 데다 가계대출이 제한되면서 올해 여름 전세가격만 1천만~2천만원씩 오른다"며 "전셋값 오름세는 99㎡ 이하 중소형에만 해당된다"고 전했다.
전세시세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계약기간이 끝나도 가격을 조금 올려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고 집주인이 전셋집을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사례도 늘어나 새로 전셋집을 알아보는 수요자는 마땅한 집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강남구 삼성동 Y공인 관계자도 "대치동 재건축 이주수요 때문에 강남에서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7월 가격보다 1억원 가량 오른 전셋집도 있다"라며 "월세와 반전세는 물건이 좀 있는데 찾는 사람들이 없어서 안 나간다"고 말했다.
오른 전세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수요자들은 시세가 싼 곳으로 떠나는 수밖에 없다. 강남에서는 판교, 분당 등 경기 남부의 신도시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많고 강북이나 금천구 등 외곽 지역도 인접 수도권 도시로 조금씩 이주하는 양상이다.
판교신도시의 P공인 관계자는 "서울 강남에서 많이들 찾아온다"며 "강남 아파트에서 살던 중장년층이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의 타운하우스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판교 일대의 고급 타운하우스는 전셋값이 6억원을 넘었는데도 물량이 모자랄 정도라는 전언이다. 이 지역 100㎡대 초반의 중형 아파트 전세가격도 올 봄보다 오른 3억~3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전문가 "월세 아닌 전세 공급 확보해야 전세난 방지"
정부는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난이 우려되자 지난달 18일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 대책을 내놨지만 최근 주택시장 양상을 보면 '헛발질'에 가깝다는 평가다.
8.18 대책의 핵심은 ▲민간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임대주택사업 대상에 오피스텔 포함 ▲다세대주택 2만 가구 공공임대 등의 공급 확대 방안인데 이는 문제의 핵심인 전세보다 월세 공급을 장려하는 정책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부동산1번지 박원갑 연구소장은 현재 주택시장의 문제를 "주택이 모자라서 전세난이 생긴 게 아니라 소형 전세주택이 모자란 것이 문제다. 중대형 전세나 소형 월세는 넘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주택경기의 침체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대다수 임대사업자가 전세보다 높은 임대소득을 얻을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고 소형 아파트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도 월세로 공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8.18 대책은 전세를 원하는 수요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박 소장은 "전세는 목돈을 받겠다는 임대 형태지만 보통 임대사업을 하는 자산가들은 급하게 목돈을 구하는 일이 많지 않아 당장 월세가 나가지 않더라도 차라리 가격을 내리지 전세로 돌리지는 않는다"며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풀면 전부 월세만 내놓으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정부가 공공임대로 내놓겠다고 한 다세대주택이나 최근 민간 건설사들이 앞장서 짓는 도시형생활주택도 '태생 자체가 월세용인 임대수익 상품'이어서 전세난해소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작 도심 부동산 시장에 필요한 것은 소형 전세주택이기 때문에 일정기간 전세 보증금을 올리지 않고 전셋집을 공급하는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임대사업자 대신 일정 가격을 유지하는 전세 공급자에 한해 세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도 "연초 전세난에 비하면 수요 증가 속도는 안정적인데 전세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사례가많아 수요자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실제 전셋값 상승폭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역시 전세 공급 부족을 우려했다.
디지털뉴스팀